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우리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여러 사람 앞에서 떼를 쓰면 다른 사람 보기에 창피해서 어린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떼문화’와 ‘떼법’은 어린애가 어떤 짓을 해도 받아 주는 부모들의 너그러운 마음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반면 서양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떼를 쓰는 것이 나쁜 습관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사회 이전에 가까운 부모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녀가 분명히 알게 해 준다. 이것이 바른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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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이 분리된 교육을 해 오고 있다. 서양에서는 교육과 훈련(education and training)이 한 단어처럼 항상 같이 쓰인다. 그것은 아는 것이 훈련을 통해 체화되어야 교육이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험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만 하도록 요구하고, 나머지는 대학 들어간 다음에 생각해 보자는 경향이 있다. 교사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 해야 할 실험실습은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체능도 시험과 무관하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알기는 아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글로벌 시민의식에 대해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행동이 좋지 않은 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복 이후 일본 군국주의식 교육을 대체하여 들어온 미국식 신교육도 이와 같이 훈련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써 오던 훈육(訓育)이란 단어를 일본식 교육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서양의 가정과 학교에서 중시하는 훈육(discipline)이란 단어에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해서 몸에 익히도록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 가정과 학교에서 이 훈육을 포기하면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체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훈육의 관점에서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적 차원에서 벌의 내용과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