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정비석 ‘자유부인’ 비판에 반박글
1954년 3월11일, 작가 정비석이 자신의 소설 ‘자유부인’을 신랄하게 비판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의 글에 정면 반박하는 내용을 서울신문에 기고하면서 논쟁이 한동안 이어졌다. 사진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자유부인’의 한 장면.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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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법대 교수가 남의 작품을 함부로 헐뜯어?!”
1954년 작가 정비석이 발끈했다. 정비석은 그해 오늘 자신의 분노와 정당함을 서울신문에 기고했다. 그 10일 전 자신의 작품 ‘자유부인’에 대해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가 교내신문인 ‘대학신문’에 신랄한 비판의 글을 게재한 반박의 내용이었다.
작품에 대한 비난도 비난이었지만 “아직 귀하의 작품 ‘자유부인’을 읽어본 일이 없다”는 것과 “귀하와 같은 동일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소위 문화인은 아니다”는 내용 등이 더욱 심경을 자극했다. 일부 “감정적” 표현도 참을 수 없다고 정비석은 훗날 전한 바 있다.(1982년 1월9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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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유부인’을 둘러싼 논쟁은 소설의 내용에서 비롯됐다. ‘자유부인’은 정비석이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215회 동안 서울신문에 연재한 소설. 대학교수의 정숙한 부인이자 가정주부가 남편의 제자와 ‘춤바람’이 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전후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단면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성 윤리’와 상류층의 타락적 풍조에 관한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자아냈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이 같은 상황에서 독자들의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1956년에는 배우 박암과 실제 다방 마담 출신 김정림이 주연하고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신을 연출한 ‘운명의 손’의 한형모 감독이 연출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 또한 속편 제작으로까지 이어지며 화제를 몰고다녔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