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기에 설계… 이후 지출 급증금융위기 직격탄 맞고 휘청… 빚의 바다에 빠진 타이타닉으로
영국 복지병의 실상을 보도한 동아일보 9일자 A5면.
○ 금융산업 의존하다 경제위기에 ‘휘청’
영국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로 끝난 2009∼2010회계연도의 재정적자는 1634억 파운드(약 294조5900억 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었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일제히 영국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좌파인 노동당조차 재정지출 삭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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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금융 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맥없이 무너졌다. 불경기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경기 부양책을 시행하느라 재정적자는 2007년부터 1년간 220억 파운드(약 39조6000억 원)가 늘었다.
○ 전후 호황 믿고 고민 없이 복지설계
그러나 영국 재정을 악화시킨 좀 더 근본적 원인은 194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복지시스템 설계의 잘못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영국의 재정 상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결과라기보다 영국 정부가 이미 짊어지고 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조 복지국가’인 영국은 복지국가의 위기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덜했던 영국은 경쟁 국가들의 후퇴에 힘입어 1950, 60년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이 기간 영국은 복지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노령연금과 의료보험, 산재보험, 실업보험, 아동수당 등 사회보장제도의 수혜 범위와 급여 수준도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사회복지지출이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5년 16.3%에서 1976년 28.6%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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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의 여인’도 못 막은 복지비 증가
극심한 불경기와 사회혼란 속에 1979년 집권한 보수당 마거릿 대처 행정부는 사회보장예산을 삭감하고 사회보장급여도 축소하는 개혁을 펼쳤지만 정부의 사회복지비 지출 규모는 이 기간에도 줄지 않았다. 인구 고령화로 노령연금과 의료비가 크게 늘어났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절대 규모는 줄지 않았지만 복지 지출의 증가 폭이 꺾이면서 복지 혜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국민들의 저항이 거셌으며, 대처 총리조차 국민적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무상 의료의 대명사 국민보건서비스(NHS)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복지시스템은 한 번 잘못 설계하면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997년 집권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도 사회복지 개혁에 관한 한 대처 행정부의 노선을 따랐다. 블레어 정부는 장기실업자들에게 직업 훈련과 구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거부하면 실업급여를 박탈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근로연계복지 정책인 ‘뉴딜 정책’을 도입했다. ‘구직 노력을 안 하면 최대 3년간 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이번 복지개혁안은 대처 행정부와 블레어 행정부의 복지개혁을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이처럼 잘못 설계된 복지 시스템으로 양산된 ‘복지의존증’을 잘라내는 데 1980년대부터 근 30년이 걸렸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