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러式 테니스 즐기며 ‘균형’ 베워요”
“진지하게 경쟁하는 치열한 테니스 경기에선 한 가지 장점으로 우승하는 건 불가능해요. 기업도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스티븐 길 한국HP 대표는 학창 시절 테니스 대표선수이기도 했던 테니스 애호가다. 그는 테니스에서 얻은 교훈이 경영에도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해 7월부터 한국HP를 이끌고 있는 스티븐 길 대표(56)를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HP 사옥에서 만났다. 이날 그는 자신이 평소 사용하는 라켓을 보여줬다. 촬영을 위해 그립(손잡이)은 새 테이프를 감아놓아 마치 새것처럼 보였지만 헤드(공이 맞는 면 부분)의 스트링(라켓을 가로세로로 엮는 그물)이 교차하는 부분마다 테니스공 표면에서 빠져나온 연두색 실밥이 잔뜩 붙어 있었다. 테두리에 생긴 수많은 흠집 사이사이엔 코트의 흙이 묻어 있었다. 지금도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그는 “테니스 선수로서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나갔을지 몰라도 테니스에서 얻은 교훈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 테니스와 기업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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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니스를 통해 팀을 이끄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목표와 전략, 실행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토너먼트 경기에도 자주 참가했는데 “좋은 성적을 내려면 토너먼트에서 이루려는 분명한 목표와 함께 경기를 치를 경쟁자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준비가 필수였다”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업에도 정해진 기간에 이뤄야 할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전략을 세워야 하며,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부족한 부분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 페데러와 HP
길 대표는 스위스의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데러를 가장 좋아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라는 것이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도, 처음으로 5년 연속 윔블던 대회 우승을 했던 스웨덴의 비욘 보리도, 심지어 페데러조차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 배우려고 했다”던 미국의 피트 샘프러스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페데러의 경기는 흔히 ‘교과서’에 비유된다. 포핸드, 백핸드, 서브와 발리 모두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페데러를 제치고 전성기를 맞은 나달은 페데러보다 체력과 스피드에서 우월하며 보수적인 페데러에 비해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PC와 프린터부터 기업용 서버에 비즈니스 컨설팅까지 다양한 분야를 모두 잘하려는 HP가 페데러의 모습에 겹쳐 보였다. 아이폰의 애플이나 TV와 반도체의 삼성전자, PC를 포기하고 기업고객에 집중한 IBM 등 세상에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유명한 HP의 경쟁자가 많은데 과연 HP의 교과서적인 경영이 이런 경쟁 상황에서도 유효한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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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HP의 그랜드슬램
그랜드슬램은 영국의 윔블던 대회와 미국의 US오픈, 프랑스와 호주오픈 등 4개 메이저대회를 한 해에 모두 석권하는 걸 말한다. 테니스 선수라면 누구나 이 그랜드슬램을 꿈꾼다. 길 대표는 지난 1년간의 경영성과를 테니스 성적에 비유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쉽지 않은 목표를 잡았고, 이를 초과해 이뤘기 때문에 그랜드슬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실제로 한국HP는 지난 1년 동안 HP 전체의 평균 성장률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하는 놀라운 기록을 냈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을 묻자 그는 비결이란 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전략을 단시일에 만들거나 새 기술 한두 가지를 연마해 경기에 이기는 경우란 거의 없다”며 “경기에서 이기는 건 습관과 같은 것이라서 평소에 꾸준히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해놓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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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잉그램마이크로유럽 최고재무책임자(CFO)
―2000년 컴팩유럽 CFO
―2002년 HP UK&I(영국, 아일랜드) 대표
―2009년 한국HP 대표(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