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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입국 ‘도쿄선언’ 40년, 갈림길에 선 한국

반도체입국 ‘도쿄선언’ 40년, 갈림길에 선 한국

Posted February. 08, 2023 08:36,   

Updated February. 08, 20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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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이 반도체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하자 당시 세계는 ‘무모한 도전’ ‘과대망상증 환자’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 산업에 투자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이 판단은 한국 경제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꼽힌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기업의 끈질긴 의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합작품이었다. 기술 개발에 매달린 삼성은 반도체 진출 선언을 한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세계 최초’ 수식어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국에 시장 확대의 기회로 작용했다. 정부도 반도체 육성 장기계획, 삼성 기흥캠퍼스 공장부지 지원 등으로 뒷받침했다.

‘도쿄 선언’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반도체가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중갈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는 갈수록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고 글로벌 수요부진에 따른 ‘반도체 한파’도 길어지고 있다.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편중에서 탈피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시스템 등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챗GPT’로 시작되는 인공지능(AI)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반도체 수요 증가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경제안보의 핵심으로 보고 경쟁적으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쏟아내고 있다. 7일 일본은 자국에서 10년 이상 생산하는 조건으로 반도체 설비투자의 3분의 1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제2 반도체 지원법’ 논의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한국은 긴장감을 찾아 볼 수 없다. 지난달 정부가 제출한 반도체 세제 지원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도 시작하지 못했고, SK하이닉스의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발표한 지 4년이 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경제안보 시대에 글로벌 경쟁을 기업에만 맡겨둘 수 없다. 연구·개발(R&D), 투자, 인재확보 등 전 분야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한국 반도체가 위기에 처해 있지만 맨땅에서 시작하던 때에 비할 바는 아니다. 40년 전 뿌렸던 씨앗이 ‘반도체 신화’의 꽃을 피웠듯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다시 한번 ‘퀀텀 점프’의 기적을 이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