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시민은 선거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10일 실시된 홍콩 구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1997년 홍콩 반환 후 역대 최저인 27.5%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는 소위 ‘애국자’로 불리는 친(親)중국 인사의 출마만 가능하도록 2021년 선거제도를 개편한 후 처음 치러지는 구의원 선거여서 ‘당선자’가 아닌 ‘투표율’이 주목받았다. 투표율이 낮으면 중국에 대한 홍콩 시민의 반감이 상당함을 의미하고, 높으면 그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알고 있는 당국 또한 투표 시간을 연장하고 사실상 돈까지 뿌려 투표를 독려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듭된 민주주의 말살 시도에 시민들이 ‘투표 거부’로 저항했음을 보여준다는 진단이 나온다.
존 리 행정장관은 “이번 선거는 애국자가 홍콩을 통치한다는 원칙을 구현하는 마지막 퍼즐”이라며 투표율 저조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경찰 또한 최소 6명의 반중 인사를 선거 방해 혐의로 체포하며 반대파를 탄압할 뜻을 분명히 했다.
● 투표 독려 시도 무위
11일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치러진 제7회 구의원 선거의 최종 투표율이 27.5%로 집계돼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일명 ‘송환법’ 도입 반대 시위로 홍콩 전역에 반중 여론이 조성됐던 4년 전 선거 때 민주화 열망에 힘입어 투표율이 71.2%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전 최저치인 1999년 구의원 선거(35.8%)보다도 약 8.3%포인트가 낮았을 정도로 시민들의 관심이 저조했다.
당국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던 지역구 의석을 기존 452석에서 88석으로 대폭 줄였다. 나머지 의석은 간접 선출하거나 당국이 임명하는 자리로 바꿨다. 이로 인해 전체 470석인 구의회가 사실상 모두 친중 인사들로 꾸려지게 돼 유권자 관심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뽑아도 어차피 친중 인사인데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미다. 민주 인사 레몬 웡은 가디언에 “친중 유권자조차 모든 후보가 동일한데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자문하고 있다. 모두들 선거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냉소했다.
투표율 저조를 예감한 당국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투표 당일에는 전산 고장이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이날 8시 30분∼22시 30분까지였던 투표 시간을 11일 0시까지 90분 연장했다.
젊은 층에 비해 친중 성향이 강한 노인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 각 요양원에 2만 홍콩달러(약 338만 원)씩 지급해 요양원에서 투표소까지 노인들을 실어 나를 미니버스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투표를 마친 이들에게 ‘투표 감사 카드’도 나눠줬다. 온라인에는 사용하지 않은 이 카드를 500 홍콩달러(약 8만4000원)에 팔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 멀어지는 일국양제
중국은 송환법 반대 시위 후 반환 당시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속속 무효화하고 있다.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에는 중국과 다른 체제를 적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실상 직접 통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당국은 2020년 반중 활동에 최대 무기징역이 가능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한 해 뒤에는 선거제도를 개편하며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모든 선거에서 개별 후보자가 ‘애국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모든 후보자로부터 충성 서약도 받고 있다. 반중 인사가 선거에 나서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존 번스 홍콩대 명예교수는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투표하지 않는 것말고는 홍콩 시민이 불만을 표출할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27.5%라는 투표율 또한 그나마 당국이 투표를 독려할 결과라고 꼬집었다.
김기용 kk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