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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불변이 아니다… 다만 ‘창조’될 뿐

색은 불변이 아니다… 다만 ‘창조’될 뿐

Posted April. 30, 2022 09:59,   

Updated April. 30, 20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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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끝은 늘 파란색이었다. 인류가 대양을 항해하기 전 푸른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계를 뜻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비싼 색은 단연 쪽빛 ‘울트라마린’이었다. 13세기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청금석을 빻아 만든 아프가니스탄산 파란 안료를 ‘올트레마레(Oltremare)’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로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뜻. 파란색 자체가 다른 세상을 상징한 셈이다. 하지만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푸른 하늘 너머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돈 날부터 인류에게 파랑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구는 푸른 후광을 갖고 있어요.” 하늘 너머 세상의 끝을 탐험한 인류가 내린 결론은 오랜 세월 다른 세계의 색이라고 여겼던 파랑이 우리 지구의 색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매뉴얼 칼리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심리학, 언어학, 고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검정, 하양, 파랑 등 7가지 색에 대한 사회문화사를 풀어냈다. 페르시아 시인의 노랫말과 존 밀턴의 ‘실낙원’, 클로드 모네의 작품 등 색채와 얽힌 예술사도 흥미롭다.

 저자에게 “색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책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가 색에 대해 품었던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색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색은 우리 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저자는 색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색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창조물이라고 본다. 일례로 영미권에서 초록은 질투의 색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공포, 태국에서는 분노, 러시아에선 지루함을 뜻한다. 색의 의미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흑백이 대표적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전 우주의 악당 다스베이더는 왜 검정 옷을 입고 그에 맞선 제다이는 흰옷을 입을까. 저자는 흑백 클리셰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사는 지하세계를 검은색으로 상상했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애초에 성경에서는 검정이 아닌 핏빛의 진홍색을 악하다고 여겼지만 서기 4세기경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도들이 “죄가 우리를 검게 만든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독교 문화권에도 검정이 악을 상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흑백 논리는 지금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색 의미 검사’에서 86%의 아이들은 검정을 나쁘다고 인식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협한 사고가 잔존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색의 의미는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색은 다르게 보려는 자에게 다르게 읽히는 법. 오늘날 기득권에 저항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새로운 검정(the new black)’이라 부르는 이유는 미술사에서 그림자나 악마를 칠하는 데 쓰였던 검은색을 캔버스 전면에 바른 예술가들, 검은색 피부에 대한 차별에 맞선 인권운동가들 덕분이다. 색의 역사는 편협한 사고를 허물며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