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1932∼2006)을 세상에 알린 작품은 1974년 미국 뉴욕에서 선보인 ‘TV부처’다. 불상 앞에 TV가 있고 TV 뒤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화면에 부처의 모습이 나오도록 만들었다. 마치 부처가 TV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빠진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관람객과 평론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이후에도 이 작품은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TV와 전통을 상징하는 불상 간의 소통을 시도하며 새로운 자기 인식 방법에 대한 담론을 제기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보상자로 지탄받던 TV는 백남준의 손을 거쳐 예술 매개로 탈바꿈됐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흐른 올해, 낯선 방법으로 미디어를 활용한 또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펼쳐졌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는 TV와 라디오, 인터넷 등 미디어가 우리 삶을 빈틈없이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 각 매체의 다른 기능성을 모색한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2020년 수상작가인 ‘캠프(CAMP)’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작가 5명으로 구성된다. 국제예술상은 백남준아트센터가 2009년부터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계승한 작가에게 수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카메라의 라이브 안무’는 감시매체가 아닌 예술매체로서의 CCTV를 조명한다. 캠프는 구도심과 도시 재생이 공존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을지로의 대림상가를 골라 올해 10월 건물 옥상에 무인 작동 CCTV를 세웠다. 1시간마다 움직임의 범위가 설정된 카메라는 그간 잘 비춰지지 않았던 도시의 주변 이야기를 담아낸다. 전시실과 웹사이트(cctv.camp)에서는 전시 기간 동안 실시간으로 영상이 재생된다. 2008년, 이들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테러 이후 CCTV를 대거 설치한 영국 맨체스터 쇼핑몰 등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최근 아트센터에서 만난 작가들은 “관객들은 CCTV를 통해 범죄 현장이나 사건을 목격하길 기다린다. 하지만 영상을 영화처럼 보면 CCTV가 지나가는 강아지나 이웃이 키우는 채소 등 친밀한 장면을 훨씬 더 많이 찍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 미적인 발견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관성에서 벗어나 미디어 매체를 활용했다는 말이다.
전시장에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캠프의 주요 작품들을 8개 대형 스크린에 펼쳐놓은 ‘무빙 파노라마’, 소수만 접근 가능했던 백남준 아카이브 자료를 온라인(njp.ma)에 오픈해 아카이브가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파일럿 프로젝트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제안’도 있다. 세 파트로 나누어진 전시는 조촐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의미가 묵직하다. 이미 우리의 환경이 돼버린 미디어의 생경한 모습을 보며 기술에는 하나의 용도만 있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들은 “미디어 인프라 위에서 개인들이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년 2월 27일까지. 무료.
용인=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