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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이자 문화인으로서 이건희를 말하다

경제인이자 문화인으로서 이건희를 말하다

Posted October. 23, 2021 08:30,   

Updated October. 23, 20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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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 경쟁력이 생긴다.”

 올 7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소개된 고인의 어록은 문화재 담당기자인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하에 궁궐 전각을 꽁꽁 걸어 잠그는 국내 문화재 정책을 볼 때마다 일상에서의 문화 향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컬렉터이자 문화인으로서 이 회장의 식견에 놀랐다.

 베테랑 현직 언론인인 저자는 고인의 중고교 동창은 물론이고 삼성 전직 임원들, 학계 및 문화계 인사 등을 폭넓게 취재해 인간 이건희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대대적인 경영 혁신뿐 아니라 그의 유년, 학창 시절부터 이건희 컬렉션의 탄생 과정까지 아우른다.

 이 중 문화인으로서 고인을 조명한 마지막 챕터에서 리움미술관 부관장을 지낸 김재열 전 한국전통문화대 총장이 전하는 고인의 말(“문화는 경제적 백업이 없으면 허사다. 한국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삼성을 최대한 이용하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수준급의 고미술품 지식을 갖추고 열정적으로 이를 수집한 건 단순히 개인의 심미안을 충족시키려는 차원은 아니었다. 이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전무후무한 그의 컬렉션이 국립 및 지방 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문화계 평가로도 이미 증명됐다.

 신경영 선언 전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과정을 당시 삼성맨들을 통해 생생히 재구성한 것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예컨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라며 극일(克日) 정신이 충만했던 이 회장은 일본인 기술고문들과 밤샘 토론을 벌이며 개선점을 집요하게 찾아냈다. 당시 이 회장과 장시간 대화한 기보 마사오 전 삼성전자 고문은 고인을 “역시 집념, 집념의 사나이”라고 회고한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고 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 직후 사장보다 급여가 더 높은 인재를 영입하라는 특명을 계열사 사장단에 내린다. 이렇게 모인 이른바 S급 인재들은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끌게 된다. 시대를 앞서간 이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저자가 고인을 경제 ‘대가’가 아닌 경제 ‘사상가’라고 칭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김상운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