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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사랑 남긴채… ‘집으로’ 할머니 하늘로

외할머니의 사랑 남긴채… ‘집으로’ 할머니 하늘로

Posted April. 19, 2021 08:20,   

Updated April. 19, 202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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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할머니. 저 이 감독이에요….”

 16일 밤 영화 ‘집으로…’(2002년)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57·여)은 이 영화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김 할머니는 건강 탓에 많이 쇠약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이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풀리면 꼭 면회 갈게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끝내 17일 새벽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의 빈소에 마련된 영정사진으로 2002년 동아일보와 인터뷰 당시 촬영한 사진이 쓰였다. 김 할머니의 며느리는 “연세가 많으셔서 2년간 병치레를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18일 통화에서 이 감독은 “며칠 버티시면 다시 건강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집으로…’는 7세 서울 꼬마가 TV도 없는 산골의 외할머니 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김 할머니는 딸이 맡긴 외손자 상우를 돌보는 77세의 언어장애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손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호(28)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큰 감동을 선사했다. 눈물을 흘린 관객도 많았다. 영화는 430만 명이 관람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김 할머니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역대 최고령 신인 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를 준비하던 이 감독은 세 가지 조건을 지닌 할머니 배우를 찾아다녔다. 쪽진 머리를 하고, 허리가 굽고, 일곱 살짜리가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체구가 크지 않을 것. 고생 끝에 충북 영동군 상촌면 지통마 마을에서 김 할머니를 찾아냈다.

 영화의 결말을 몰랐던 할머니는 나중에 손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완전히 감정에 몰입해 서운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자랄 때 외할머니와의 정이 각별했다. 영화 마지막에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생전 외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한 사랑을 표현했다.

 이후 이 감독은 매해 가을 김 할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며 교류했다. ‘집으로…’ 촬영 후 할머니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감독이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배우나 스태프를 데리고 갈 때면 “(이 감독은) 남자 친구가 자주 바뀌네”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할머니는 영화를 촬영하실 때도, 촬영 후에도 항상 친절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셨다. 할머니와 영화를 찍었던 기억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4시 50분. 02-2152-1360


이호재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