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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형님 찾으려 탈북브로커 돼 죽었단 말 안믿소

국군포로 형님 찾으려 탈북브로커 돼 죽었단 말 안믿소

Posted August. 26, 2013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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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형을 찾기 위해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탈북 브로커가 된 거죠. 혹시라도 북한 이산가족 명단에 형 이름이 있을지 몰라 조마조마합니다.

김영보 씨(63경기 부천시 소사구)는 24일 오후 4시 경기 부천 소사구의 자택에서 본보취재팀을 만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실의 TV에선 남북이산가족 상봉 뉴스가 한창이었다. 김 씨는 형이 살아있다면 올해 여든세 살이라고 했다.

대구 달성군이 고향인 김 씨는 60년 전 형 윤보 씨와 헤어졌다. 4남1녀 중 막내였던 김 씨는 당시 세 살, 형은 스무 살이었다. 가난한 농사꾼 집안이었던 탓에 가족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가족들은 형이 막내였던 김 씨를 유난히 아꼈다고 말했다. 밭일에 바쁜 부모님 대신 형이 김 씨를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형은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육군에 입대했다. 1953년 전쟁은 끝났지만 형은 돌아오지 못했다. 정부는 휴전한 뒤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실종신고를 받아 사망자 처리했다.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안에 있는 현충탑 위패봉안관 46판 4번 41호에 형 김윤보 씨의 위패가 안장됐다.

그러던 중 1998년 6월 25일 김 씨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방송국으로 뛰어갔다. 1997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국군포로 양순용 씨 방송에서 북한 아오지 수용소에서 국군포로를 여러 명 만났다는 증언을 들었기 때문. 양 씨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김 아무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신 아무개 줄줄이 이름을 댔다.

김 씨는 양 씨를 만나 형의 소식을 물었다. 양 씨는 아오지 수용소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대구 말을 쓰는 김윤보라는 사람을 알고 지냈다며 당신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김 씨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형을 찾기 위해 국군포로 가족 20여 명을 모아 2000년 대구에서 국군포로가족협의회를 결성했다. 그해 12월 북한에 형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만나는 데 실패했다.

북한 주민이나 국군포로들의 탈북을 돕는 활동도 시작했다. 정보원을 통해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 등의 소식을 얻은 뒤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에게 전달해 주고 탈북계획을 세웠다. 김 씨는 이 일을 하면 탈북한 사람들로부터 형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며 형을 찾는 게 우선이고 혹시 못 찾더라도 남을 도우면 하늘이 형을 돕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김 씨가 탈북시킨 사람만 해도 국군포로가 5명, 일반 탈북자가 20여 명, 납북어부가 3명이다.

2005년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1차 후보자 명단에 뽑힌 김 씨는 형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었다. 하지만 8월 10일 정부는 북측으로부터 형 김윤보 씨가 사망했다는 통보가 왔다고 알려왔다.

믿을 수 없었다. 탈북한 국군포로들을 만나 북한 내부 사정을 물었다. 국군포로 중에서도 끝까지 북한 정권에 비협조적이거나 주체사상을 따르길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오지 탄광이나 수용소에 넣어놓고 살아있는데도 사망자로 처리된다는 증언을 들었다.

취재진을 만난 김 씨는 여전히 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 씨는 중국에 수차례 건너가 북한 함경북도 인근 국경을 둘러봤다며 아오지 탄광이 있는 골짜기 입구가 바로 눈앞에 보였는데 그 안쪽 어딘가에 형이 있다는 생각에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김 씨의 서재 벽에는 커다란 대한민국 지도가 붙어 있었다. 북한 곳곳에 아오지 수용소-형이 있을 것으로 추정, 중국 정보원 접촉 등의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 씨는 25일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아직 1차 명단에 들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가슴 졸이며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북한에 가족을 둔 이산가족들은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소식에 매일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24일 이산가족으로 등록돼 있는 생존자 7만2882명 중 고령자와 직계가족 순으로 1차 상봉후보자 500명을 추첨을 통해 뽑았다. 9월 16일 최종 이산가족 상봉자 100명의 명단이 확정될 예정이다.

부천=이은택 기자백연상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