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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노숙소녀 살인 재심서 무죄 경찰 거짓말 회유-강압수사 논란

수원 노숙소녀 살인 재심서 무죄 경찰 거짓말 회유-강압수사 논란

Posted October. 26, 2012 09:09,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노숙인이나 정신지체 장애인을 살인사건 범인으로 옭아매는, 비리 경찰관을 다룬 영화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진범은 따로 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일명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돼 5년간 옥살이를 한 정모 씨(34)에게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정 씨가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또 다시 경찰 수사 방식에 대한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2007년 5월 14일 오전 5시반, 경기 수원시의 S고등학교에서 당시 15살이었던 가출 청소년 김모 양의 시체가 발견됐다. 김 양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아 숨진 상태였다. 노숙자들을 상대로 탐문을 하던 경찰은 김 양이 발견되기 이틀 전 노숙자 정 씨와 강모 씨 등 6, 7명이 수원역에서 2만 원을 훔쳐갔다는 이유로 한 여성 노숙자를 심하게 때렸다는 정보를 얻고 정 씨와 강 씨를 긴급체포했다.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두 사람은 이틀 전 자신들이 때린 여성 노숙자 때문에 조사를 받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정 씨는 사건 당시 수원역 대합실에서 잠을 잤지만 김 양을 때린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거짓말 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경찰은 이미 지문이 나왔고 네 얼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고 겁을 줬다. 동시에 경찰은 강 씨에게 정 씨가 계속 거짓말을 해서 형사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 너라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벌금만 나오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결국 이들은 수사기관의 선처를 기대하며 자백을 했다. 정 씨를 비롯한 노숙자들이 수원역에서 마주친 김 양을 이틀 전 자신들이 때린 여성 노숙자로 착각해 S고등학교로 데려가 또 때렸다. 이후 다른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도 정 씨만 혼자 남아 김 양을 때려 죽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정 씨는 검찰과 법정에서도 수차례 혐의를 인정하다 다시 번복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1심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7년이 선고되자 항소하며 본격적으로 경찰이 강압수사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형이 5년으로 낮아졌을 뿐 유죄는 그대로 확정됐고 정 씨는 옥살이를 했다.

정 씨의 억울함은 경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5명이 잡히며 풀리게 됐다.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강 씨가 정 씨를 포함해 기소된 모든 사람들이 김 양을 때린 적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것. 검찰은 강 씨를 위증죄로 기소했지만 무죄가 선고됐고, 5명도 무죄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 올해 6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정 씨의 자백을 믿을 수 없고 어떤 CCTV에도 정 씨가 김 양을 범행장소로 데려가는 장면이 찍혀있지 않다. 또 김 양의 사망 추정시각도 수사기관의 주장보다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사건 발생 이틀 전 다른 노숙자를 때린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하면 사건은 다시 대법원에 갈 수도 있다. 정 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38사시 45회)는 수사기관의 실적 욕심에 사회적 약자가 희생된 사건이라며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 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씨는 수원의 한 노숙자 자활센터의 도움을 받아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했던 A 형사는 또 다른 영아유기살해 사건에서도 여성장애인을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로부터 징계 권고 결정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성규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