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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 시위 주도하다 망명 민주국가서 다시 태어났어요 (일)

반독재 시위 주도하다 망명 민주국가서 다시 태어났어요 (일)

Posted March. 20, 20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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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살았다. 2001년 8월 21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브라함(가명38) 씨는 충남 아산시 선문대 어학당으로 가는 유학생 전용버스를 타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국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걸린 기간은 꼬박 한 달. 그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잠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해 5월 아디스아바바 국립대에 다니던 아브라함 씨는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동료들은 모두 구속됐지만 그는 친구 집을 오가며 도피생활을 계속했다. 비밀정보국 수사관들은 매일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잡히기만 하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일부 가족은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의 독재정치는 17년간이나 이어졌다. 장군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집과 땅을 몰수당했고, 거듭되는 박해를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뒤이어 세상을 등졌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 이어졌지만 독재정권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1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대되자 정부는 대규모 검거령을 내렸고, 당시 대학생 수백 명이 걸어서 국경을 넘거나 해외로 도피했다.

평소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인 선교사가 숨어 있던 그에게 어학연수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한국으로 도망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케냐에서 15일, 일본에서 15일간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그는 고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았으니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법무부에 신청했다. 2005년 9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일본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그동안 신학을 전공해 대학을 졸업했고, 한 대학교수의 소개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으나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사장은 6개월 만에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충남 천안시에 조그만 집도 장만했다. 뒤늦게 한국으로 온 여자친구와는 2005년 3월 교회에서 둘만의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세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3월 아브라함 씨는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귀화를 신청했다. 법무부는 그의 성실성과 생계유지 능력 등을 고려해 예상 심사기간보다 6개월 빠른 1년 만에 그의 귀화를 허가했다. 난민 출신으로선 최초로 한국인이 됐다. 19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만난 그는 귀화증서를 품에 안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새로 태어나게 돼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스스로 새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어제 새로 샀다는 까만 양복은 그의 까만 얼굴과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최창봉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