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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판사 입법

Posted February. 19, 20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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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판결을 할 때 헌법과 법률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구체적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관련 규정의 근본정신이나 입법()취지에 충실해야 한다. 판사는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지,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사에겐 객관화된 직무상의 양심이 요구된다. 판사의 입맛대로 재판하는 것은 헌법이 말하는 양심에 따른 독립된 심판이 아니다. 대법원 판례가 법률 해석의 기준이 됨은 물론이다.

대부분의 법률은 제1조에서 제정 목적을 밝힌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판사는 이러한 입법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전주지법 진현민 판사는 중학생 등 180명을 빨치산 추모제에 데려가 반국가적 의식화 교육을 시킨 전직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해칠만한 실질적 해악성()과 이적()활동의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다. 검찰은 법해석을 넘는 입법()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피고인은 빨치산 추모제 참가 이외에 김일성 주체사상과 연방제 통일, 핵무기, 주한미군에 관한 북한과 빨치산의 주장을 학생과 동료 교사들에게 주입했다. 그는 국보법 등을 위반해 3년간 복역한 전력도 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은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동조, 이적표현물 취득 소지 배포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판사는 빨치산이 과거 일에 불과해 실질적 해악이 없고 이적성()도 없으며, 이적표현물은 암호 상태여서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는 이적표현물을 호기심에서 갖고 있거나 학문적 연구용이 아닌 한 이적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실정법 취지와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 그래서 법률의 해석을 뛰어넘은 판사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념교육에 물든 학생들이 빗나간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는데도 실질적 해악성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장폭동이라도 일어나야 실질적 해악성을 인정한다는 말인가. 주체사상, 김정일 어록 등 이적표현물을 인터넷에 올려 퍼뜨렸는데도 이적성이 없다는 판결은 판사의 법률해석권을 벗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