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라를 3개월간 공황 상태에 빠뜨리며 사회를 극한 갈등으로 몰고 갔던 일입니다. 법원이 올바른 판단으로 갈등의 소지를 풀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면죄부를 줘서 갈등을 조장한 셈이 됐어요.
MBC PD수첩 제작진을 고소했던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사진)은 평소 스스로를 팔자가 정말 사나운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 왜곡 보도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불구속 기소됐던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적잖이 상심한 듯했다.
특히 그는 PD수첩의 보도 내용이 허위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PD수첩의 보도 내용은 지난해 민사 1, 2심에서 상당 부분이 허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재판이 진행되며 허위 보도라고 인정된 내용이 더 늘었어요. 그래서 시청자에게 사과 방송까지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번 판결은 그걸 다 뒤집어버렸어요. 어떻게 판사의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똑같은 법원의 판단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이어 법원은 막강한 권한만 있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권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정 방송국이 무책임한 보도로 언론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지 않아서 사법부의 판단을 물었던 겁니다. 그런데 상식 밖의 판결을 해놓고는 사법부의 독립성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향후 촛불시위와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지면 문 판사가 책임을 지겠습니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휴대전화기로 쉴 새 없이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전날 판결에 대해 정 전 장관을 위로하는 메시지라고 했다. 그에게 좀 보여 달라고 했다. 힘내세요. 항소해서 꼭 이길 겁니다, 옮고 그름은 하늘이 알고, 정의는 감춰도 드러납니다, 저희가 옆에 있습니다. 전화벨도 수차례 울렸다. 그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1기 내각에 참여했던 전직 장관들의 전화였다.
그래도 모두 저를 응원하는 메시지여서 그나마 힘이 나네요. 촛불시위 때에는 미친 소 너나 먹어라, 자손 대대 먹고 미쳐라 등 입에 담지 못할 악성 메시지만 들어왔는데.
정 전 장관은 MBC PD수첩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진행될 2심, 3심 재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형사 1심 재판에서는 문 판사가 독자적으로 판단했지만 2심부터는 여러 명의 판사가 합의부 형태로 진행하는 만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적어도 국민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판결은 나오지 않길 기대합니다.
그는 2008년 상반기 촛불정국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같은 해 8월 장관직에서 자진 사퇴한 뒤 농업 현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당시 본보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PD수첩에 대해 픽션을 만들어 사상 최대의 파문을 일으킨 역사상 유일무이한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차지완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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