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교감 선생님이 곧바로 5학년 1반 교실로 안내했다. 라오스 학제는 초등 5년, 중등 6년으로 중등교육은 한국의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라오스 중등학교 5학년이면 한국의 고등학교 2학년인 셈이다.
학생 45명이 물리를 배우고 있었다. 교사가 / 유니아 픔(교과서를 보세요)이라고 하자 학생들이 교과서를 들었다. 눈에 익은 문양이 교과서 뒤표지에 찍혀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중등학교 교과서 보급사업을 지원했다는 내용의 소개와 함께 태극기가 선명히 인쇄돼 있었다.
KOICA는 2007년부터 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지원해 지난해까지 중등학교 4, 5, 6학년(한국의 고교 1, 2, 3학년) 13개 과목 236만 권과 1, 2, 3학년 국어교과서 30만 권 등 총 266만 권을 인쇄해 전국에 배포했다. 국정교과서 보급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최근 라오스 정부는 중등학교 교과과정을 새로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교과서가 필요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의 능력만으로는 새 교과서를 보급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KOICA에 추가적인 교과서 지원 사업을 요청한 상태다.
자동차를 타고 다시 동북쪽으로 이동했다. 산악길이 나왔다. 울퉁불퉁한 비포장인 데다 너무 꼬불꼬불해 차멀미가 심하게 났다. 도로에는 중앙선도 없어 마주 오는 차량과 부딪치기 십상이었다. 2시간가량 지나 방비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강이 있어 배낭족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방비엥 중심가에서 다시 자동차로 15분가량 가자 벌판에 KOICA가 소수민족 학생들과 고아들을 위해 세운 방비엥민족중등기숙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KOICA가 2008년부터 2년 동안 289만 달러(약 34억6800만 원)를 지원해 지난해 11월 26일 개교한 기숙학교다. 이 학교가 생긴 후 인근 방비엥과 사이솜본에 있던 고아학교 2개는 폐교되고 학생들도 모두 새 학교로 옮기고 있었다.
학교 건물도, 책상 의자도, 기숙사 침대도 모두 새것이잖아요. 이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어요. 너무 좋아요. 여기 보세요. 2층이 제 침대예요.
중등 5학년생 빠터쫑흐 양(19여)은 신이 나서 8명이 함께 쓰는 자신의 방을 보여줬다. 빠터쫑흐 양은 자신의 2층 침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는 라오스의 소수민족인 몽족() 출신이다. 소수민족은 대개 고산지대나 오지에 살아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18세이면 중등학교를 졸업하지만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제때 입학하지 못해 또래보다 학년이 낮다.
또 다른 소수민족인 야오족 출신의 므아이째 양(14여중등 2학년)은 침대가 익숙하지 않아 밤마다 한 번씩 침대에서 떨어지지만 편하게 잘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국어(라오스어) 선생님이 될 거예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민족중등기숙학교는 총 6400m 터에 교실 16동, 기숙사 76실(8인 1실), 650명 수용규모의 식당을 갖춘 라오스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 건물이다. 학생 정원은 모두 520여 명. 지난해 12월까지 학생 295명이 전학을 왔고 나머지 학생들은 올해 상반기에 인근 학교로부터 전학 오기로 돼 있다. 교사는 교장을 포함해 모두 45명. KOICA 봉사단원 4명이 영양관리 컴퓨터 작물재배 음악교육 등을 나눠 맡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학교의 통뎀 교장은 우리 학교는 부모가 없거나 너무 가난해 배울 수 없는 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국가가 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등학교 졸업만으로는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더 배우게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라오스의 취학률은 높지 않다. 한국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취학률은 2007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71%다. 중등과정 취학률은 급격히 떨어져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전기 3년은 39%,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후기 3년은 19%에 그친다. 2007년 기준으로 대학 진학률은 2%에 불과하며 총 대학생 수는 3만7000여 명 정도다.
기자가 학교를 떠나려 하자 빠터쫑흐 양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바람이 있다면 공부를 계속하는 것뿐입니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아봐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이 학교를 졸업하면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춘기 라오스 KOICA사무소장은 KOICA는 민족중등기숙학교 건립, 국정교과서 지원 사업 외에도 라오스가 최빈국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며 농촌개발 보건의료 정보통신 분야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KOICA는 최근 비엔티안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 떨어진 볼리칸 지역 7개 마을에 취수시설과 정수시설을 갖춘 식수공급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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