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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러준 양모 청부살해 인륜의 적

Posted August. 18, 200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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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어머니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을까요. 너무나도 후회돼요.

그는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얀 피부에 멀끔해 보이는 그는 평범하면서도 유복해 보였다. 문득 영화 공공의 적에서 배우 이성재가 맡았던 연쇄살인범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이성재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유산을 가로챈 악당 역을 맡았다. 영화 속 인물이 현실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유산 때문에 평생을 길러준 어머니를 청부 살해한 30대 남성이 범행 15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7일 청부업자를 동원해 모친 유모 씨(70)를 살해하고 유산을 가로챈 혐의(강도살인)로 이모 씨(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이 씨의 의뢰를 받고 유 씨를 살해한 혐의로 박모(31), 전모 씨(27)에게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의 범행은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된 것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사설 경마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이 씨는 지난해 3월 초 어머니 유 씨에게 사업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빌려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유 씨는 경마에 빠져 재산을 날린 너에게 유산을 줄 수 없다며 사회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분노한 이 씨는 어머니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PC방을 찾아 공범을 물색하던 중 전과자와 출소자의 쉼터란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서 시키는 일은 다 해 주겠다는 글을 올린 박 씨 등을 만나 1억3000만 원을 건넨 뒤 어머니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돈을 받은 박 씨와 전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이 씨를 만나 유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기회를 노렸다. 이들은 일주일간 유 씨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등 범행 장소를 물색했다. 유 씨가 아침 운동을 하러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모 대학 앞을 자주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 앞에서 승용차로 치어 살해하려 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위장한 범행 계획이 주위의 이목으로 실패하자 범행 장소를 유 씨의 집으로 바꿨다. 평소 당뇨병을 앓아온 어머니가 병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유 씨의 집 주소(경기 성남시 수정구)와 출입문 비밀번호 등을 박 씨에게 건넸다. 박 씨 등은 같은 해 5월 2일 오전 4시 유 씨 집에 침입해 숨어 있다가 아침운동을 하고 돌아온 유 씨를 비닐 랩으로 질식시켰다.

이 씨는 마치 어머니가 당뇨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진 것처럼 꾸미고 부검 없이 바로 장례를 치렀다. 이후 이 씨는 어머니의 재산 20억 원을 상속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갓난아기 때 유 씨에게 입양된 양자였다. 하지만 유 씨는 하나뿐인 양아들에게 어릴 적부터 보약을 먹이며 끔찍이 아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도 양아들인 나를 친자식처럼 잘 돌봐주셨다고 진술했다. 이후 이 씨는 보험금을 포함한 유산 20억 원 가운데 15억5000만 원을 3개월 만에 사설 경마장에서 탕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유 씨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긴 지인들로부터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뒤 이 씨가 박 씨 등에게 돈을 건넨 정황을 포착하고 이 씨를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았다며 이 씨는 유산을 주지 않겠다는 말에 순간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