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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도운 자가 인신매매 중서 짐승처럼 팔려다녀

탈북 도운 자가 인신매매 중서 짐승처럼 팔려다녀

Posted May. 01, 200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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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클럽. 미국 비영리 시민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주최한 탈북여성 77명의 육성 증언을 토대로 발간한 인신매매 인권보고서 거래되는 인생(Lives for Sale) 발간을 계기로 2명의 탈북여성들이 육성 증언했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눈물로 증언해 기자회견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먼저 증언한 무산광산 선전대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방미선 씨(2004년 한국 입국)는 2002년 남편이 굶어죽은 뒤 두 자식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생계형 탈북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국에 가자마자 인신매매단에 팔려 여러 차례 강제결혼을 하는 등 인권유린을 경험했던 방 씨는 북한여성들이 더는 짐승처럼 팔려 다니지 않게 되길 소원한다며 자신의 비극적 삶을 털어 놓았다.

방 씨는 중국 가면 밥도 많이 먹을 수 있고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어 탈북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현실은 비참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인신매매 시장에서 585달러에 장애인 중국 남성에게 팔렸고 그 다음에도 다른 남성들에게 다시 매매 됐다며 마지막에는 14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야 했고 그 남자는 아이 낳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 씨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탈북자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곳에서는 지독한 매질과 강제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 씨는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너무 매를 많이 맞아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며 치마를 걷어 올려 당시 고문으로 생긴 허벅지 상처를 직접 보여줬다. 기자회견장에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말을 잇지 못한 방 씨는 나와 같은 희생자가 더는 다시 나오지 않도록 미국과 국제사회가 도와줘야 한다며 북한여성이 앞으로 이런 고통을 받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어 증언에 나선 김영애 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겪은 인신매매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이지만 (내 증언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씨 역시 남편과 사별한 뒤 어린 아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고향을 등지게 됐다.

김 씨는 중국으로 가는 탈북을 도와준 사람이 인신매매조직 일원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며 730달러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남자에게 팔려 딸까지 낳았다고 말했다. 이후 남자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에서 도망쳐 나온 뒤에도 몇 차례 다른 중국인 남성에게 팔리기를 거듭한 뒤 2007년 12월 24일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김 씨는 당시 중국에서 낳은 아이가 1명 있지만 여건이 안 돼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위원회는 이날 내놓은 64쪽짜리 보고서에서 중국과 북한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 전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은 채 침묵해 오고 있다며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강제결혼과 감금, 그리고 북한 강제 송환 시 고문과 극단적인 경우 죽음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탈북여성들의 참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