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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8 독립선언

Posted February. 07, 200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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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000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의 만국 앞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1919년 2월8일 오후 2시,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 1층 강당에서 400여명의 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근촌() 백관수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일본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진 28독립선언은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에만 적용될 뿐 식민지 조선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조선유학생들의 자각()에서 비롯됐다.

이보다 앞서 그해 1월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결의한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는 실행위원으로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등 10명을 선출했다.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한뒤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송계백을 국내로, 이광수를 상해로 파견했다. 국내로 잠입한 송계백은 현상윤 최린 등을 찾아가 거사계획을 알렸고, 독립선언서 초안은 송진우 최남선 손병희 등에게도 전달돼 국내에서 준비되던 거족적 독립운동 계획에 힘을 불어넣었다.

28독립선언 대회는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실행위원 10명 등 27명의 유학생이 체포됐다. 하지만 이들의 불타는 애국정신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28 선언이 거행된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이 있던 도쿄 치요다구 니시간다 36 일대는 현재 도로가 돼있다. 회관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불타 사라졌고, 지금의 재일()한국YMCA회관은 1980년 500m이상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한국 YMCA 측은 옛 회관 터에 기념표석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 중이나 어디가 회관 터였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보훈처는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 보고서(2002년)에서 옛 회관이 현재 (회관이 서있는) 위치에서 좀 떨어진 지금의 니시간다 일대로 추정된다고만 기록해놓았다.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6일 서울 종로구 YMCA 회관에선 28독립선언 9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하지만 거사 장소조차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선열들 앞에 면목이 없다. 이러니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외국 지도와 사이트가 판을 치는 것 아닌가.

박 성 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