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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 핀 이야기 꽃 겨울우화 지펴볼까

Posted December. 14, 2007 03:13,   

눈밭 사이로 텐트 20여 동이 둥지를 틀었다. 밤나무 사이에 자리 잡은 텐트의 연통에서는 눈처럼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토요일인 8일 오후 6시 경기 가평군 북면 도대리의 밤나무 농장인 무지개 서는 마을의 풍경이다. 일찍 찾아온 밤 그림자 때문에 주변은 캄캄했지만 텐트 주변을 밝힌 등불 덕택에 올해 서울에서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눈이 제법 두껍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낮에 눈싸움으로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저녁밥을 한껏 먹었다. 화로 위에서 지글거리던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소금이 뿌려진 장어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울 캠핑을 즐기는 것은 한국 캠퍼들의 독특한 문화다. 추운 날씨에 어떻게 캠핑을 하는지, 아이들은 캠프장 안팎에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살펴봤다.

텐트 안에 나무난로 설치해 추위 걱정 없어

텐트 안에는 나무를 때는 나무난로가 있었다. 옛날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사용하던 것이 크기만 줄어든 형태다. 연기는 교실의 나무난로처럼 연통을 설치해 빼낸다. 나무난로의 연통은 일단 옆으로 뻗어나가 텐트 바닥 부분으로 빠져나간 후 텐트 바깥에서는 수직으로 세워지는 L 모양이다. 연통이 텐트를 빠져나갈 때 천에 닿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삼각형 모양의 틀. 캠퍼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것이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침낭 속에 탕파()를 넣고 잔다. 뜨거운 물을 넣어서 온도를 높이는 기구다. 자라 모양을 닮아 자라통이라고도 불린다. 자주 쓰는 유단포는 일본말이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전기장판을 함께 사용한다. 겨울철 캠프장을 선택할 때 캠퍼들이 전기가 들어오는지를 따지는 이유다.

준우(9) 준서(7) 두 아들을 데리고 금요일 밤을 보낸 홍연기(40) 백육현(36여) 부부는 전기장판으로 바닥의 냉기를 차단하고 침낭을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춥지 않게 겨울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캠프장 분위기에 반해 올해 8월부터 오토캠핑을 시작했는데 겨울 캠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실형 텐트는 하부가 바닥과 붙어 있지 않고 상부에는 곳곳에 환기창이 있다. 외부 공기가 유입돼 순환하기 좋은 구조다. 물론 그 옆에 연결되어 있는 침실형 텐트는 하단부가 막혀 있어 찬바람을 막는다.

그러나 거실형 텐트 안에서 조리용으로 나온 숯을 태우는 것은 질식의 우려 때문에 위험하다. 난방기구는 일단 잠이 들기 전 끄고 자는 것이 안전하다. 외국에서는 사냥용 텐트를 치는 일부 캠퍼들이 겨울 캠핑을 하는 정도지만 한국의 캠퍼들은 뜨거운 물을 순환시키는 간이 보일러까지 만들어 캠핑을 즐기고 있다. 텐트 바깥에서는 화로를 사용할 수 있어 추위 걱정은 없다. 웬만큼 춥더라도 장작불을 쬐고 있으면 추위는 가고 겨울밤의 운치만 남는다. 식사를 할 때는 화로 위가 바로 식탁이 된다.

아늑한 텐트 속 공간 아이들은 보드게임 삼매경

8세 아들을 둔 이은주(37) 씨는 준비된 놀이 엄마다. 캠핑 기간 동안 자신의 아이나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즐길 놀이를 준비해 온다. 대형마트에 가서 목공용 풀을 사고 집에 있던 실톱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만들기 놀이 시간을 선사한다. 잔가지를 요리조리 잘라 잠자리, 애벌레, 달팽이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냇가에 놀러 가면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주워 오라고 해서 그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한다. 자신이 주워 온 돌멩이 모양을 보고 어떤 것을 그리면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주문하면 아이들만의 창의력이 튀어나온다는 것이 이 씨의 말. 돌멩이 그림을 모아 캠프장 한곳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캠프장 아이들에게 영어 캐럴을 가르쳤다. 그리고는 저녁 시간 캠프장의 공동 행사 때 진행자의 도움으로 5분 동안 깜짝 합창 공연을 가졌는데 참석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중학생 아들딸과 함께 캠핑을 다니는 조용찬(42) 씨는 인터넷 등 디지털형 놀이를 추구한다. 전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무선인터넷을 이용한 웹서핑도 허락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책도 읽고 보드게임도 즐긴다.

반면 일체의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고 자연형 놀이를 추구하는 아빠도 있다. 박연수(40) 씨는 자연과 접촉을 늘릴 수 있도록 집에 있는 장난감은 일부러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9세, 13세 된 두 아들은 아빠의 장작패기를 도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이들은 주변에 언덕이 있으면 비닐 포대를 깔아서 눈썰매를, 얼음이 언 냇가가 있으면 썰매를 즐긴다.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를 주워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열매의 단면을 잘라 도장을 만드는 놀이도 단골메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따뜻한 텐트 안에서 장기나 체스, 보드게임을 즐기는 가족도 많다. 아이들 숙제를 들고 와서 공부하는 시간도 갖는다는 백육현 씨가 말했다. 캠핑은 일탈 속에서 진행되는 일상 같아 즐겁다. 월요일만 되면 주말 캠핑이 기다려진다.



허진석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