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초 과학을 살려 주세요.
포스텍(포항공대) 박찬모 총장과 포항가속기연구소 고인수 소장은 9일 기자에게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립이 늦어져 선진국과 과학 경쟁에서 뒤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여 다양한 파장과 광도의 빛을 생산하는 빛 공장이다. 이 빛을 활용하면 일반 현미경으론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와 금속물질의 움직임과 표면구조, 분자구조를 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현실과 먼 연구실이 아니라 수천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내는 황금알이다. 삼성전자는 1999년 빛 공장에서 휴대전화 비파괴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자의 틀어진 위치와 납땜 불순물을 발견했다. 이로써 소자 불량률을 70%에서 10%로 낮출 수 있었다.
포스코도 2000년 방사광가속기의 도움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용 철강이 압력을 받으면 쉽게 깨지는 원인이 주석 불순물임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제철기술을 보유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성과는 포스텍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에 1994년 설치된 3세대 가속기에서 나왔다. 정부가 596억 원, 포스코가 864억 원 등 모두 1500억 원을 들여 완공된 이 가속기는 공공 연구시설로 자리 잡았다. 전국에서 매년 2000여 명이 찾아와 연구해 국제 학술지에 700여 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이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용광로는 투자하면 쇳물을 쏟아 내는데 가속기는 빚을 쏟아 낸다는 농담이 한때 있었지만 경제적 효과를 보자 이젠 욕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포스텍 측은 태양보다 10억 배나 밝은 빛을 만들어 내는 160m 길이의 3세대 가속기를 현재보다 10억 배나 더 밝은 빛을 쏟아 내는 길이 350m의 4세대 가속기로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지만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4세대 가속기는 물에서 수소가 떨어져 나오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어 대체에너지에 대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현재 2000여 개밖에 규명되지 못한 단백질 구조를 파악해 신약 개발 및 유전공학 연구를 선도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외국은 수천억 원을 들여야 하지만 한국은 1000억 원만 있으면 기존 시설을 보완해 4세대 가속기를 만들 수 있다.
당초 200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9년 완공함으로써 외국보다 앞선 각종 연구를 할 생각이었지만 한국이 멈칫하는 사이에 외국이 성큼 앞서가고 있다.
미국은 2008년 말 1km 길이의 4세대 가속기를 완공할 예정이다. 일본 독일 등도 2006년 말 시제품을 만들었고 3, 4년 안에 완공한다는 계획 아래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4세대 가속기 건립 계획을 알고 부랴부랴 서둘러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7월 노무현 대통령은 예산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과학기술부는 2005년에 4억 원, 2006년에 4억 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설계비 10억 원만 배정했다. 전남 고흥 우주연구단지, 대전 핵융합연구센터 등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 소장은 예산만 뒷받침되면 2010년까지는 4세대 가속기를 완성할 수 있다며 차세대 에너지와 생명공학 분야에서 선진국을 앞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창봉 ceric@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