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이면 지방자치단체 4기 시대가 시작된다.
민선 1기부터 지방 행정을 책임져 오다 3선 임기 말로 물러나는 한 지방 시장의 진솔한 육성 고백을 통해 11년 한국 지방자치의 빛과 그늘을 들어 본다.
치열하게 당선하고 나면 맨 먼저 어느 읍, 동에서 표가 얼마나 나왔나부터 봅니다. 표가 적게 나온 데는 괘씸한 마음에 경로당이나 마을길이 급해도 예산집행 순위에서 뒤로 미뤄 버립니다. 아무리 표에 목숨을 거는 선출직이라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데. 늦게나마 주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이달 말로 3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경북 김천시 박팔용(59) 시장은 15일 김천시청 집무실에서 11년간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 박 시장은 그동안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하자면 며칠 밤낮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당장 주민들에게서 좋은 소리 들을 만한 일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었던 일, 현실적으로 실천이 어렵지만 힘껏 해 보겠다며 무작정 시간 끌기를 했던 일, 다음 선거의 공천을 염두에 두고 생색내기용 정책을 집행했던 일 등.
박 시장은 그러면서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는 정말 고칠 점이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시장은 재임기간 중 행정자치부 선정 지방자치경영대상을 포함해 130여 차례 상을 받았다. 지자체에 주어지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다시피 했다.
고속전철 김천역 유치, 전국체전 유치 등으로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 공천이면 막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경북지역에서 두 번이나 무소속으로 당선된 시장이다. 두 번 다 경선에서 떨어졌다. 현역 의원과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게 그가 말하는 이유였다.
그런 박 시장도 돈 문제만 나오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제 와서 털어놓지만 박 시장의 참회록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듯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 장마철이나 태풍 때 허술한 다리들을 찾아가 모래공사를 하는 척하면서 밤에 굴착기로 다리 기둥을 들이받아 흔들거리게 한 적도 수없이 많습니다. 비로 다리가 떠내려가면 중앙에서 재해복구비가 내려오기 때문이죠. 작은 다리 하나 놓는 데 수십억 원씩 들어가니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중앙 정부의 예산을 타내기 위해 별 꾀를 다 냈습니다.
수모를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인터뷰 당일도 임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시 예산을 따러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예산을 받으려고 1년에 3040번은 서울에 올라갑니다. 밤낮으로 뛰기 위해 보통 1박 2일 코스로 잡습니다. 1년 중 4분의 1은 중앙에 예산 앵벌이하러 다닌다고 보면 됩니다. 하루는 모 부처 국장을 만나러 갔다가 의자도 없는 복도에서 1시간 가까이 기다린 적도 있지요. 도로 예산 15억 원 따는 게 목표였는데 10분 정도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알았으니 자료를 놓고 가라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명색이 15만 명 주민을 대표해서 왔는데, 이럴 수 있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피해서 주변엔 말도 못하고. 서울시같이 돈 많은 곳 아니고는 중앙에서 예산 안 주면 공무원 월급도 못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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