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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천씨 미대륙 철도횡단 프로젝트 동행기

전수천씨 미대륙 철도횡단 프로젝트 동행기

Posted September. 20, 200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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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길이 440m에 달하는 15량짜리 열차를 덮어씌운 흰색 폴리에스테르 천은 비와 바람과 먼지에 회색으로 변해 갔다. 기차를 흰 색으로 덮어씌운 것은 기차 전체를 하나의 붓으로 생각해 미 대륙을 백의민족의 혼이 관통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따라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과 문명을 가장 잘 투영할 색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의 국영 철도인 암트랙이 운영하는 5500km에 달하는 철로를 특별히 빌려 이뤄졌다. 열차는 레일 크루즈라는 개인 회사에서 임대했다. 레일 크루즈의 얀 앤더슨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행사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안전을 생명으로 여기는 미국 문화에서 한 예술가의 행사를 위해 철로를 내준 것 자체가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모든 노선에 정기열차들이 잠시 비는 시간을 틈타 열차가 달리도록 시간표를 철두철미하게 짜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소개했다.

전 씨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중견 작가. 1989년 나무를 천에 싸서 강에 흘려보낸, 한강 드로잉을 선보인 바 있는 작가는 1993년 문명 간 화해와 대화를 모색한다는 뜻으로 미 대륙 횡단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했다.

전 씨는 유학 시절 미국 땅을 여행하면서 서로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미국의 얼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 동양인을 우습게 보는 미국 문화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식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받았던 여러 가지 영감을 한국을 상징하는 흰색을 씌운 열차로 관통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열차에는 미술평론가 송미숙 성신여대 교수, 건축가 황두진, 방송인 황인용, 피아니스트 노영심, 사진작가 배병우, 소설가 신경숙, 영화평론가 오동진, 풍수학자 조용헌, 한국화가 김호득 씨 등 문화계 인사와 예술가, 스태프 등 100여 명이 동승했다. 일반 관광객도 6명이 참여했다.

열차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를 지나던 15일 오전 열차 안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를 토론하는 한미 공동 심포지엄도 열렸다.

캔자스대 존 펄츠(예술사) 교수는 지금까지 현대미술은 어떤 고정된 장소와 개념에서 이뤄졌는데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무엇이든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려고 했다고 평가한 뒤 오래 된 운송 수단이면서 이제는 사람보다는 물건을 더 많이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된 철도에 정신과 문명을 담은 점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시카고대 W.J.T 미첼(영문학) 교수는 이 행사는 안(기차)과 밖(자연)의 개입이며 생각의 중개라고 정의 내린 뒤 19세기에는 첨단이었으나 지금은 후진 운송 수단으로 전락한, 열차를 통해 이뤄진 이번 행사는 오래된 것과 새것의 충돌이며 기계와 첨단,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큐레이터 정연심 씨는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이번 드로잉은 한편으론 미 대륙의 정복자들이 동에서 서로 매일 떠났던 개척의 여정이고, 또 한편으론 한참 동안 정주에 익숙해진 인간들에게 보내는 유목민적인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전 씨는 이번 행사를 위해 문화관광부와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단, 기업(현대자동차, 삼성전자)들에서 10억여 원의 지원을 받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21일 오후 6시 로스앤젤레스 기차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종착역 도착을 68시간가량 남겨 놓은 18일 밤 현재 열차는 앨버커키를 지나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니 고원지대 위로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앨버커키(미국 뉴멕시코 주)



허문명 ang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