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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 하나에 인생이 피고 지고

Posted August. 30, 200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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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권력자 이전에 화가였던 산정

산정은 20세 때인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1954년 3회 국전에서 운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으며 26세에 서울대 교수, 32세에 국전 심사위원이 됐다. 이후 수십 년간 서울대에서 후학들을 길러냈고 서울대 미대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지내는 등 화단에서 명성과 권위를 함께 누렸다.

그러나 전시장을 둘러보면 산정은 의외로 베일에 가린 화가였음이 느껴진다. 그는 교육자나 제도권 미술의 권력자이기 전에 화가였고 게다가 전위였다.

제1전시실은 이 같은 그의 실험정신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한낮의 역동감을 강하고 진한 필묵으로 표현한 정오(1957년)나 툭툭 점들로만 나열한 비명(1962년)의 붓질에서는 생의 허무와 활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단지 한번의 붓질로만 표현한 잠자는 새(1980년)에서는 절제의 미학이, 화폭 가운데와 바깥 외곽에 점 몇 개로 구름이 모여지고 흩어지는 공간을 그린 작품들(구름이 모여드는 공간1976년, 구름이 흩어지는 공간1977년)에선 한국화 여백의 미학을 뒤집어엎은 천재성이 느껴진다.

이런 작품들은 그의 성취가 사실 남들의 무시와 손가락질을 이겨 낸 모험의 산물이었음을 확인케 해준다. 동양화라고 하면 으레 산수화나 화조도를 떠올리던 시절에 그는 오로지 점과 선, 먹의 발묵() 효과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데리고 1958년 묵림회()를 만들었을 때 일각에서는 청년 서세옥의 당돌함과 과감함에 냉소했다. 산정은 미쳤다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고 회고했다.

사람 키가 넘는 대작들로만 구성된 2전시실은 그가 40대에 시작해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만든 인간 시리즈들이 걸려 있다. 그는 단지 붓놀림 하나로 기다리는 사람, 고독한 사람, 좌절한 사람, 춤추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웃는 사람들을 표현했다. 농묵, 담묵, 파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작가의 말대로 바람 불고 천둥소리 일어나는 듯 번뜩이며 내려쳐진 선들로 가득하다. 붓과 먹 하나로 어떻게 인간을 표현할 것인가를 붙잡고 혼자 외로운 길을 걸어온 노장의 땀과 고민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만획과 파지의 흔적도 고스란히

1, 2전시장 가운데서 만나는 전각작품들과 스케치 작업들도 흥미롭다. 마치 화장하지 않은 산정의 맨얼굴을 만나는 듯하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주의를 추구해 온 산정은 이번 전시에서 일획을 위해 수없이 그은 만획과 파지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한시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는 이 시대 마지막 문인화가로 꼽히는 산정이 전각에 몰두할 때, 사람들은 외도를 한다고 수군거렸지만, 그것은 사실 사선()을 넘나드는 투병생활로 어쩔 수 없이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조차 놓지 않았던 예술혼의 산물이었다. 고행과 외로움의 산물인 이들 작품에선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정작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을 기다리며 살아 온 노장의 고독이 짙게 배어 있다.

산정은 식민의 땅에 태어나 광복과 분단, 전쟁, 산업화라는 현대사의 고비를 고스란히 겪은 이제 몇 안 남은 예술계의 원로다. 하루가 10년 같았던 끝 간 데 없는 절망과 허무의 나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 온 거목은 이제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0월 30일까지. 덕수궁 입장료(1000원) 외에 별도 입장료는 없다. 02-2022-0613



허문명 ang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