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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거름 훔쳐오면 나도 부자가

Posted February. 06, 200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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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이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대 예산(42억 원)을 투입해 한국세시풍속사전(전 6권)의 첫 권인 정월 편을 최근 출간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은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음력은 물론 양력의 기념일에 맞춰 행해지는 의례, 속신, 복식, 절식, 놀이, 민요, 속담을 망라한 대사전. 기존의 가나다순 사전과 달리 월별과 일별로 시간순으로 세시풍속을 소개한 것이 특징이다. 일년 열두 달 중 정월에 수많은 세시풍속이 몰려있어 봄 편에서 정월 편을 떼내 분권했다.

정월에는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인 설, 대보름, 단오, 추석 가운데 설과 대보름이 들어 있고 입춘과 우수 외에도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 많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특이한 세시 풍속.

똥 도둑질=평안북도 강계 지역에서는 음력 설날 첫닭이 울자마자 농부들이 부잣집의 퇴비를 몰래 훔쳐다가 자기 집 퇴비 위에 던지는 풍속이 있었다. 부잣집 기운이 옮겨온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정월 대보름 때 부잣집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에 뿌리는 복토 훔치기 풍습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행해졌다.

야광귀 쫓기=야광()이란 귀신이 설날 밤에 찾아와 아이들의 신발을 훔쳐 가면 1년 신수가 불길하다는 믿음에서 행해진 풍속이다. 아이들의 신발을 숨겨놓고 긴 장대에 체를 걸어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놓으면 야광이 체의 구멍 숫자를 세느라 신발을 훔쳐갈 생각을 못한다고 여겼다. 보통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고, 설날에는 차례와 세배로 곤하게 잠들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속으로 보인다.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갖고 간다=설 관련 속담.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 표현은 세배는 정초에 해야 하는데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이 피는 봄에나 가는 것이라며 처갓집 챙기는 것을 은근히 타박할 때 썼다.

생선 온마리 먹기=경상경기충남강원 등에서 전승된 풍속으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반찬으로 주로 청어를 통째로 먹는 것을 말했다. 이는 건강을 기원하는 한편 비린내가 적은 청어를 먹어 여름철 집안에 파리가 많이 꾀지 못하도록 하고, 머슴들을 푸짐하게 대접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복합적 뜻이 담겨 있었다.

나무 아홉 짐 하고 밥 아홉 번 먹기=정월 대보름 때 무슨 일이든 아홉 번씩 해야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이 밖에 매월 1, 8, 13, 18, 23, 24일은 인동토일()이라고 해서 흙을 다루면 지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믿었는데 특히 정월 초하루를 조심했다. 동티라는 말의 어원도 흙을 움직인다는 한자어 동토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 음력 정월 초이렛날은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사람날()로 불렀고, 평남 용강에서는 열나흗날을 부인날이라고 부르면서 여성들의 이웃집 방문을 환영하는 풍습이 있었다.

정월 편에는 이처럼 잊혀져가는 세시풍속은 물론 시무식과 연하장 등 오늘날의 양력 설 세시풍속까지 모두 595개 항목을 담고 있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올해 안에 봄 편과 여름 편이 추가되고, 2006년도에는 가을 편과 겨울 편이 발간된다. 마지막 권은 전체 색인 편으로 꾸며진다. 02-3704-3226(민속박물관)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