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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미안해, 우리만 살아서

Posted January. 04, 20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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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5시경 태국 푸껫의 하늘이 잔뜩 흐려졌다. 여차하면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카론 해변에서 기자에게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역을 보여주던 택시운전사 차이 씨(27)는 빨리 시내 숙소로 돌아가자고 재촉했다.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날도 난데없이 비가 왔거든요.

지난해 12월 26일 쓰나미가 태국 남부를 휩쓸기 바로 전날 밤 비가 왔다는 것. 12월은 태국의 건기(통상 10월다음해 5월)여서 웬만해선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새해 첫날의 먹구름을 보며 악몽의 재현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이 운전사만의 반응이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입은 깊은 내상()은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며칠간 기자가 다시 쓰나미가 온다는 소문이나 경보를 들은 것만도 다섯 차례다.

태국 보건부는 지난해 12월 말 쓰나미 생존자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5000여 명의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자들을 피해 지역으로 급파했다. 특히 피해가 심한 팡아 주에는 2000여 명을 파견했다. 이들 전문 의료진은 최장 2년간 머물 예정이다.

태국 정부 당국자는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불면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객지에서 쓰나미를 경험한 외국인들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3일 피피 섬에서 만난 미국인 킴벌리 살렙스키 씨는 함께 왔다가 숨진 친구의 유가족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려고 다시 이곳에 왔지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 섬을 찾지 않을 것이라며 몸을 떨었다.

해변 호텔은 손님이 뚝 떨어졌다. 시내 호텔들은 100여 명씩 대기할 정도로 붐비는 반면 파통, 카론, 카타 해변으로 이어지는 해변 호텔은 3060%밖에 방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관광산업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 3일 파통 해변을 깜짝 방문한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는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호텔이 최대한 빨리 복구될 수 있도록 하겠으니 다시 푸껫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푸껫 시내는 점점 한산해지는 모습이다.

휴게실에 수십 장의 매트리스를 깔아 임시 병상을 만들었던 방콕 푸껫 인터내셔널 병원도 부상자들이 대부분 퇴원해 외관상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다. 자원 봉사자들은 3일 모두 철수했고, 현관 안내판에 촘촘히 붙어 있던 실종자 사진도 대부분 사라졌다.

실종자와 사망자를 확인하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푸껫 시청도 지금은 구호품 배급처와 피해접수 센터만 붐빌 뿐이다.

파도는 물러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악몽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박형준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