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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두번 울린 경찰

Posted December. 12, 20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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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지역 고교생들의 10대 여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마땅히 지켜야 할 피해자 보호를 소홀히 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누리꾼(네티즌)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시민단체에서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수사 행태=7일 오후 울산남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성폭행 가담 혐의를 받고 있는 남학생 10여 명이 일렬로 섰다.

잠시 후 형사들이 피해자인 A 양을 데리고 들어와 성폭행 가담자들을 지목하라고 했다. A 양은 망설이며 몇 명을 지목했다. 가해 용의자들은 뒤돌아선 상태였지만 A 양은 이들 앞에 다시 선 것 자체가 충격적인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성폭행 사건은 물론 대부분의 형사사건 수사에서 범인 식별을 할 때 피해자나 목격자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한 채 일반 피의자들이 조사를 받는 형사과 사무실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들에게 노출시킨 것.

이에 앞서 이날 A 양은 조사를 받으러 출두하다 경찰서 후문 입구에서 가해자 가족 H 씨(22상업) 등에게 둘러싸여 신고해 놓고 제대로 사나 보자. 몸조심해라는 등의 협박을 받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식별실이 가해자가 한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좁아 피해자의 동의를 구한 뒤 가해자를 직접 지목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울산남부경찰서 김모 경장(39)은 이날 자신의 사무실에서 A 양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너희들이) 밀양 물 다 흐려놨다고 폭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조만간 김 경장을 중징계할 방침이다.

또 경찰은 A 양이 여경에게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처음 한 차례만 여경에게 조사를 맡겼을 뿐 이후 가해자가 너무 많고 여경 중에 수사 전문가가 없다며 남자 형사들이 A 양을 조사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장되고 허점투성이인 발표=경찰은 7일 발표한 검거보고서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A 양(14중3)의 동생(13중2)도 7월과 9월 두 차례 언니와 함께 창원과 밀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생은 둔기로 맞기는 했지만 성폭행은 당하지 않은 것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인정했다.

경찰이 가해 학생들이 소속됐다고 밝힌 밀양연합의 실체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밀양연합은 구성원 대부분이 온몸에 문신을 하고 몸무게가 80kg 이상인 고교생 범죄동아리라며 범죄단체 구성 혐의에 대해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의 확인 결과 손가락 등에 자 등을 새긴 학생이 4, 5명 있을 뿐 온몸에 문신을 새긴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가해 학생 대부분은 밀양연합이라는 말은 경찰서에 와서 처음 듣는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 축소 의혹=경찰은 당초 붙잡힌 41명 가운데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17명을 구속 수사했으며 미검자 75명에 대해서는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8일 3명, 11일 9명 등 총 12명만 구속하고 29명은 범행 사실을 부인한다며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추가 범행 사실이 드러난 게 없다며 가해 학생의 신병을 처음 확보한 뒤 엿새만인 12일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일부 가해 학생들이 밀양연합이라는 말을 해 이들 모두 이 단체에 소속된 것으로 보고 범죄단체 여부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여경 조사관이 피해자 조사를 하지 않고 경찰이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정재락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