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갇혀있던 남자는 도대체 누가 왜 그렇게 자신을 증오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살면서 저지른 잘못을 낱낱이 기록하는 악행의 자서전을 쓴다. 그 노트가 무려 14권. 최민식은 실제로 악행의 자서전을 쓴다면 반 페이지밖에 못 쓸 걸요하면서 웃는다.
황당한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면 인생을 복습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살면서 다른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나, 그 사람은 지금 나를 증오할까 생각하게 되죠.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되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할 때 주인공은이 아니라 내 (연기) 파트는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의 어법이 귀에 쏙 들어왔다.
배우가 전체의 한 부분인 건 당연한 거죠. 내가 그래도 누구인데 그렇게 생각하려면 연기하지 말아야죠. 그 정도 책임감이 없다면, 이렇게 비싼 마스터베이션이 어디 있겠어요. 출연료 몇 억, 제작비 몇 억이 뉘 집 애 이름인가.
What 그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올드 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복수극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이거 너무 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극대화된 영화라는 설명.
그래도 스타일리시한 복수극,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예요. 부조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유머도 많아요. 연기하다가 아니, 이거 코미디영화예요?하고 박 감독에게 물어볼 때도 많다니까.
각색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함께 토론하면서 물건을 만들어낸 과정을 뿌듯해하는 그에게 그럴 바에 감독을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펄쩍 뛴다.
난 나를 알아요. 그런 일을 하면 아마 혈압이 올라 죽을 걸. 나는 선천적으로 하나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감독은 별 걸 다 생각해야 되잖아요. 나는 그런 거 못해요.
Why 그는 상황 설정만 비슷한 같은 이름의 원작 만화 올드 보이만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시나리오가 나오지도 않았고 캐릭터의 행동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연 결정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얼마 전에 대머리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 가발을 장난으로 벗긴 친구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얼마나 수치스러웠으면 그랬겠어요. 사람이 마음을 다치는 일 중엔 정말 별 것이 아닌 게 많은데, 그런 감정을 극대화하면 감정이입을 못할 일도 없죠.
자기 색이 뚜렷한 작가인 박 감독에 대한 믿음도 출연 결정을 내리는 데에 한몫했다.
박 감독 역시 최민식이라면 할 만하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둘이 만나 하십시다!하고 의기투합했죠.
최민식은 마치 거사를 모의한 사람처럼 벙글벙글 웃는다.
How 그는 감금방 안에서 복수를 위해 체력 단련을 한 뒤 세상에 나온 남자가 되기 위해 10kg을 감량했다. 후반부 촬영이 끝나면 15년 사이 감금방 안에서 절망에 빠져 살이 엄청나게 쪘던 때를 촬영하기 위해 8월 말에 2주 동안 다시 10kg을 불려야 한다.
하루 다섯끼 먹고 맨날 술 먹고 해봐야죠. 살을 다시 불릴 걸 생각하면 미치겠어요.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그런데 몸무게 빼고 불리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이건 캐릭터의 신체조건에 가깝게 접근하는, 직업상 하는 일에 불과해요.
노숙자처럼 지저분해 보이는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고, 마음에 들 리가 있어요. 분장사가 그런 의견을 내고 감독도 동의해서 제안한 건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해야지 어쩔 수 있냐고요.
When 올해 41살. 그는 평생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이거(연기) 계속해야 돼요. 배운 지식이 이것밖에 없고 한 순간도 내가 하는 일을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10년 뒤에도 계속 배우로 남고 싶죠.
그러나 그는 단순히 호구지책만을 위해 구질구질하게 배우하고 싶진 않아요. 그럴 위험이 보이면 깨끗하게 접을 거예요. 속으로야 부대끼겠지만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 좋다는 말을 듣고 사는 그이지만, 작품이 영 아닌데 누가 부탁해서 영화에 출연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내 일을 스스로 무시하면 안 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작품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가 인정 많은 그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철칙이다.
Where 영화 촬영 현장은 지루한 기다림과 인내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희열을 느낀다.
현장에서 1, 2분짜리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1시간 이상 자기 일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 그 한 순간을 위해 숨을 죽이고 집중하다 마침내 감독이 컷! 아, 좋았습니다!를 외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만족하는 그 순간, 그때의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럴 땐 아,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하는 존재감을 느껴요.
김희경 susanna@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