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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지 밥 우드워드 신간서 CIA 아프간공작 비화 소개

WP지 밥 우드워드 신간서 CIA 아프간공작 비화 소개

Posted November. 18, 20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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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공작국에서 32년간 일해온 개리씨(59)는 911테러가 났을 당시 은퇴를 몇 주일 앞두고 있었다. 8일 뒤 CIA의 대테러리즘센터 책임자인 코퍼 블랙에게 호출당했다. 블랙씨는 즉시 팀을 조직해 빈 라덴의 목을 상자에 담아오라고 명령했다.

70년대 테헤란과 이슬라마바드의 비밀요원으로 시작해 두바이와 카불 지부장을 거쳐 중동 및 남아시아 담당 부책임자를 지낸 개리씨인만큼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그는 아프간의 주요 통용어인 파슈투어()와 다리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지난해 9월26일 오후 12시반 그는 CIA 소유의 러시아제 헬기 Mi 17을 타고 아프간 동북부의 험한 계곡인 판쥐쉬르를 넘고 있었다. 언제든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의 스팅어 미사일에 격추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헬기에는 암호명 딱딱한 캔디(Jawbreaker)팀에 속하게 된 공작국 극비 특수활동 부서원 9명이 타고 있었다. 그의 다리 사이에는 일련번호로 연결되지 않은 100달러 지폐 3만장이 든 철제 가방이 놓여 있었다.

카불 북쪽 110지점에 내린 그들을 아프간의 반()탈레반 북부동맹군들이 맞이했다. 그날 밤 그는 북부동맹의 정보 및 보안책임자 무하메드 아리프 사와리에게 50만달러를 내놓으며 군대를 증강시키기 위해서는 맘대로 써도 좋다고 말했다. 다음날 개리씨는 모하메드 파힘 북부동맹군 사령관에게도 100만달러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모두 7000만달러가 든 공작금의 상당분은 탈레반 전사들을 매수하는 데 쓰였다. 지휘부대의 규모에 따라 5만달러에서 1만달러짜리 등급이 매겨졌다. 한 탈레반 지도자는 5만달러를 제의받고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특수부대 A팀이 유도한 정밀유도탄이 그의 본부 옆 건물에 투하됐다. 위협용이었다. 다음날 CIA는 1만달러를 깎은 4만달러를 제의했고 그는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개리씨의 임무는 북부동맹군의 증강과 탈레반 전사들의 매수 외에도 전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는 것. 지난해 10월1일 그가 보낸 비밀 전문은 미국의 아프간 참전 형태를 결정짓는 정보를 담고 있었다. 탈레반의 군부대가 전선에 밀집해 있어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충분히 격파할 수 있으며 지상군의 임무는 북부동맹군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 이 전문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다.

그 결과 CIA 110명과 특수부대원 316명, 그리고 공중전력만으로 아프간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공습이 고정 표적에 집중돼 이동하는 표적에 대한 효과적인 파괴가 이뤄지지 못했다. 곧 점령할 것으로 예상됐던 전략요충지 마자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워싱턴은 전쟁이 베트남전처럼 수렁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에 빠졌다. 특히 딕 체니 부통령과 CIA에 밀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미 지상병력 5만명을 투입하는 대안을 모색했다.

10월25일 국가안보회의는 전쟁의 진로를 결정지은 자리였다. 부시 대통령은 단호했다. 누구에게도 이의를 제기할 틈을 주지 않고 지금 전략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환호에 가득찬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본부로 돌아가 부하들에게 그대로 간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어 11월9일 마자르가 함락됐고 한달 뒤 아프간전쟁은 끝났다.

역시 만국 공용어는 영어가 아닌 달러였다. 이 돈으로 승리를 샀다. 구소련이 아프간에 지상군을 투입하고서도 이기지 못했고 결국 군비 부담에 눌려 두 손을 든 데 비하면 가장 효과적인 투자였다.



홍은택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