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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고급인력 유치 글로벌 경쟁 한국 현주소 (일)

해외 고급인력 유치 글로벌 경쟁 한국 현주소 (일)

Posted July. 27, 2011 07:40,   

파키스탄 출신의 컴퓨터공학도 라자 씨(25)는 조만간 한국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친척들이 있는 영국으로 대학을 옮길 계획이다. 2년 전 한국에 입국할 때 만해도 박사학위를 마친 뒤 한국에 정착할 생각이었다. 라자 씨가 계획을 바꾼 것은 유학생활 중 겪었던 불쾌한 경험들 때문이다. 백인 유학생과 달리 검은 피부의 그에게 한국생활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식당에서 그를 경계하는 종업원들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학교 기숙사를 나와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 했지만 찾아가는 집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받아주지 않았다. 라자 씨는 연봉도 높고 기회도 많은 영국에서 다시 유학생활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엔은 세계인구 전망에서 2100년 한국의 총인구는 3722만 명으로 현재보다 23%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1.22명) 탓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선진국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젊은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뿌리 깊은 차별의식으로 능력 있는 외국인 유학생마저 한국에 등을 돌리면서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만 늘어날 뿐 젊은 고급인력 유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장벽 높은 외국 고급 인재 유치

코트라는 6월 국내 10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들과 미국과 캐나다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현지 채용시장이 얼어붙은 틈을 타 외국의 우수인력을 유치하려는 계획이었다. 실제 채용설명회에 참가한 150명 가운데 40%가량은 석박사 학위가 있는 현지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채용돼 국내로 들어온 인재는 현재까지 한 명도 없다. 한국인 직원보다 높은 초봉 7만8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코트라 관계자는 외국 우수 인재들은 현지기업보다 1.52배 이상 연봉을 높게 주지 않으면 한국에 잘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며 해외 인재 유치 장벽은 여전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외국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미국과 유럽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한국인 유학생들만 채용했을 뿐 국내 기업에 취업한 외국 인재는 거의 없다. 외국의 고급인력을 이민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들이 늘어야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외국 고급인재 채용은 잠시 한국을 거쳐 가는 임원급에 한정돼 있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한국의 기업 문화와 자녀교육 등 거주 여건이 외국보다 떨어지는 점이 한국을 기피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없는 한국 이민정책

문제는 한국으로의 이민 가능성이 높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의 유학생들도 한국을 등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영주권자 939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구직활동을 하며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65.6%, 승진 등 직장생활에서 차별을 겪었다는 응답도 44%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취학과 학교생활, 주택 임차 등에서도 차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고급인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서 쌓은 경력을 징검다리 삼아 싱가포르, 홍콩, 미국, 유럽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국내 연구기관이나 기업들에 인도, 파키스탄 출신 인재들이 적지 않지만 능력이 뛰어날수록 한국에 남겠다는 이들은 적다며 선진국 인재유치보다는 이들을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외국 인재 유치를 지원하고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변변한 이민법조차 없는 실정이다. 일부 부처에서 고급인재 유치를 위한 장기 전략을 세우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민청 설립을 주장하고 있지만 검토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을 막기 위해선 해외 고급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세워 장기적인 이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황형준 weappon@donga.com constant25@dong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