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나랏빚 GDP 112%비둘기 모이도 못준다 아테네 곳곳 시위 (일)

나랏빚 GDP 112%비둘기 모이도 못준다 아테네 곳곳 시위 (일)

Posted April. 23, 2010 02:24,   

日本語

그리스 정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그리스 정부를 경쟁력 있게 바꾸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아마 제2의 알렉산더 대왕으로 불릴 겁니다.

지난달 23일 그리스 아테네의 번화가인 엘무 거리에서 만난 코스타 코스트리나키스 씨(56)는 정부는 재정위기에 빠진 뒤 무조건 평범한 중산층과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무능하고 부패한 그리스 공무원들이 과연 부자들의 희생을 이끌어낼 생각은 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흥분했다.

코스트리나키스 씨는 6개월 전 그리스의 국영 항공사였던 올림픽항공의 민영화 과정에서 해고된 전직 항공기 엔지니어. 그는 이날 그리스 경제부 청사가 있는 이곳에서 300여 명의 옛 동료들과 함께 우리 연금과 월급에 손을 대지 말라 더 이상 해고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을 취재하면서 목격한 그리스 현지 분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의 한국을 보는 듯했다.

극에 달한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불신

아테네시 북부 서민층 거주지에 있는 한 재래시장. 기자가 그리스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 노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감자를 팔던 앙겔로스 타나소플로 씨는 버럭 화를 내며 정부를 욕했다. 그는 정부가 재래시장에서도 영수증 제도를 의무화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정책이라며 부자들의 세금을 제대로 걷을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우리처럼 힘없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동의를 표시했다.

정부와 공무원에 대한 반감은 엘리트 계층에도 퍼져 있었다.

그린 에너지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토스 코레스 사장은 그리스의 관료주의를 괴물(Monster)이라고 표현하며 그리스의 병든 관료주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유럽의 주변국들은 그린산업에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풍부한 일조량과 풍력 기술 개발에 유리한 수많은 섬, 해변가를 지닌 그리스는 관광산업 외에는 이 자원을 전혀 활용하지 않을 정도로 정부가 무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리스는 말 그대로 국가부도 직전의 상태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원해주지 않으면 5월 19일 만기가 돌아오는 100억 유로의 채무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를 선언해야만 할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12.6%에 이르는 국가채무를 감안하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스 국민들을 만나보니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는 듯했다. 국민들이 정부와 공무원을 극도로 불신하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부 결집력이 상실됐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EU 국가들이 그리스 지원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도 이 같은 그리스 국내 분위기 때문이다. 긴축을 통한 그리스의 구조조정 방안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으면 애써 지원한 자금만 날리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비둘기도 배 곪아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아테네시 네오코스모스 지역. 향긋한 빵 냄새가 나는 아담한 빵집 앞에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빵집을 운영했다는 아나 지아말키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진열장이 꽉 차도록 빵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몇 개 진열대가 비게끔 만든다며 지난해 9월부터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고 푸념했다.

빵을 사러 온 한 주부는 예전에는 그날 산 빵은 그날에만 먹고 남는 건 버리거나 비둘기 모이로 던져줬는데 요즘은 보관해뒀다가 그 다음날에 먹는다며 요즘은 서민 못지않게 거리의 비둘기들도 생활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산층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시내 상가는 더욱 썰렁해진 모습이다.

아테네 엘무 거리에 있는 망고 자라 같은 유명 브랜드의 매장들은 하나 같이 매출이 줄었다. 망고 매장의 매니저인 알렉산드라 아나그노스타키 씨는 갈수록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크리스마스와 함께 최대 쇼핑 시즌인 부활절 특수()도 이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세계 경제의 또 다른 화산 그리스

그리스 공공노조는 22일부터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네 번째 파업에 돌입한다. 정부청사는 물론 병원과 학교도 문을 닫는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아테네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공무원이 집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과다한 공공부문의 지출과 제조업 비중이 낮은 산업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스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을 줄곧 내세웠지만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오히려 공무원은 5만 명이 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그리스를 제외한 15개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회원국과 국제통화기금(IMF)는 11일 그리스에 올해 450억 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21일부터 2주간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그리스 재무장관은 적어도 3년 동안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유로존 지원책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구조조정의 대가를 치러야하는 IMF자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그리스의 국가부도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스 문제는 유럽 국가를 넘어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IMF는 20일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을 1월 발표 때보다 0.3%포인트 올린 4.2%로 밝혔지만 유럽지역에 대해선 그리스 사태와 관련한 국가채무 위기, 재정수지 적자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경제 회복이 느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금융계 인사들이 골드만삭스 충격이 잠잠하니 유로존이 부각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에 이어 그리스 경제가 세계 경제를 위협할 또 다른 화산 분출구가 될 것이라는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그만큼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세형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