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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선문화 600년의 잠 깨다

Posted May. 13, 20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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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끊임없이 재창조된다. 최근 중국의 문화 고도()인 쑤저우 항저우를 답사한 결론이다. 문화혁명기에 파손된 문화재가 모두 복구되고 있는 현상은 중국의 세계적 위상 강화와 관련되어 주목되는 부분이다.

재창조하면서도 그 역사는 아득히 먼 연원에 대고 설명하고 그 문화유적과 관련된 문화상품을 창출하여 자연경관과 함께 묶어 관광자원화하고 있었다. 아울러 녹지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계속 확대하는 정책으로 풍치지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그 사이사이에 보석같이 박혀 있는 문화유적이 어우러져 휴식공간과 볼거리를 함께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광복 반세기가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일제에 의해 훼철()된 문화유적이 여기저기서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일제가 집중적으로 파괴한 문화재가 왕궁 등 왕실 관련 유적들이다. 일제는 조선왕조를 이씨 왕조라 하여 일반 백성과는 상관없는 이씨의 왕조일 뿐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왕실과 백성의 이간을 획책하고, 조선의 왕궁이나 행궁들을 헐고 그 자리에 경찰서나 학교 등 관공서를 지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활용공간이 많았을 터인데도 굳이 문화재만 골라 파괴하였으니 교묘한 술책이 아닐 수 없다.

경복궁을 헐어 저들 식민통치의 총본부인 총독부를 짓고 지방의 행궁들을 모조리 헐어버렸다.

시흥 행궁 등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며, 수원 행궁은 현재 복원 중이다. 총독부건물이던 중앙청의 보존 문제로 찬반양론이 팽팽하더니 이제야 헐어버리고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들을 본격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서궐로 불리던 경희궁도 수난을 면치 못했다.

경희궁을 서궐이라 한 것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묶어 동궐이라 하고 경복궁을 북궐이라 하듯이 그 위치가 서쪽에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경희궁은 1910년 일제강점 후 일본 학생들을 위한 경성중학교를 지으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이 헐렸고 경계도 반으로 축소되었다. 그 건물을 이어받은 서울고가 이전한 후 숭정전() 자정전() 등 정전 지역 일부가 복원되었는데, 서울역사박물관의 개관에 맞추어 개방된다 한다.

그 궁궐 경내에 들어선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시민의 염원에 힘입어 5월 21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역사박물관으로 10여년의 준비 끝에 역사적인 개관을 하게 된 것이다.

백제와 조선의 도읍지일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서울 정도 600년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서울역사박물관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문화국가로서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특히 서울은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은 그 시대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줄 중요한 책무를 갖고 태어났다.

선사시대의 고고학적 발굴유물부터 시작해 역사시대의 미술사적 전시로 일관하고 있는 기존 박물관의 정석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박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수집된 유물은 2만점을 넘었고 그 중 약 절반 정도인 9804점이 기증유물이라 하니 말 그대로 시민들이 만드는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도 없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하였고 무료전시회를 자주 열 예정이라 하니 서울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 기대된다. 상설전시 이외에 개관특별전으로 조선여인, 그 삶과 문화와 서울 2002 도시 비전과 실천을 기획했다고 한다.

진열장 속에 유물을 평면적으로 배치하는 기존의 전시기법을 탈피해 영상을 3차원으로 보여주고 정보검색도 함께 하는 전산화작업도 했다 하니 그 입체적 전시기법으로 앞으로 최첨단박물관의 선도 역을 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새로운 역사박물관의 역할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의 편안한 안식처로 항상 새롭게 거듭나는 박물관이 될 듯 싶다.

경희궁이 완전 복원되면 전각들을 비워 놓고 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박물관으로 활용해 선인들의 삶이 녹아 있는, 살아 숨쉬는 궁궐로 만들어 갔으면 싶다.

조선시대 문화사 전공자로서 앞으로 조선문화의 정수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문화박물관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