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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구조 인생서 가장 참혹… 트라우마 치유 나서야”

입력 | 2025-12-29 04:30:00

[무안 제주항공 참사 1주기]
31일 정년퇴임 조양현 구조대장
수색지도 그려 179명 신원 확인
“소방관으로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




“37년 구조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베테랑이라 자부했지만, 저 역시 참사 후 3개월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년퇴임을 사흘 앞둔 28일, 조양현 전남도 119특수대응단 특수구조대장(소방령·60·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년 전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참사 등 현대사의 비극적 현장을 모두 누빈 인명 구조의 베테랑에게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평생 씻기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난해 참사 직후 현장에 투입된 조 대장은 20여 일간 수색 활동을 총괄했다. 그는 현장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고 구역을 4개로 나누고, 항공기 기체를 조각 내 이동 통로를 확보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 규정이나 매뉴얼에도 없던 ‘수색지도’를 수첩에 직접 그려 나갔다. 희생자를 발견한 위치에 일일이 깃발을 꽂고 기록한 이 지도는 179명 희생자 전원의 신원을 신속히 확인하는 결정적 토대가 됐다. 조 대장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참사 속에서 단 한 분도 빠짐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리는 것이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명을 완수한 대가는 가혹했다. 수색을 마친 뒤 3개월간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홀로 밤길을 걸으며 기억과 싸워야 했다. 현장의 상흔은 조 대장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색에 참여한 일부 대원들은 당시 기억을 잃거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전형적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세를 보였다. 조 대장은 “참사는 잊힐 뿐 지워지지 않는다. 힘이 들 때면 어김없이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며 현장 투입 인력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강조했다.

31일 정복을 벗는 그는 퇴임을 앞둔 19일에도 무안공항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조 대장은 “유가족과 소방관들이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와 조직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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