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진 정리가 골치다.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그 사진을 정리하는 데에 거짓말 조금 보태 여행만큼의 시간이 든다. 당장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만 정리 안 된 수만 장의 사진이 기다리고 있고, 클라우드와 외장하드에는 일단 옮겨놓고 보자 했던 것들이 쌓여 열어보기도 무서운 무질서가 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많은 추억을 다 어쩌면 좋아….”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마 전 책, 옷, 가구 등의 짐을 싹 정리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마음으로 ‘디지털 짐 정리’를 하기로 했다. “그래, 죽을 때 이 사진들을 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호기롭게 폴더 하나하나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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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영상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할머니와 어린 조카가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 할머니는 연신 얼굴을 숨겼다가 ‘까꿍’ 내밀기를 반복하고, 조카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만지다 뭐가 재밌는지 까르르 웃는다. 할머니는 5년 전에 돌아가셨고, 품에 쏙 안기던 말캉한 아기는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막상 열어보니 그 방대한 양도 양이었지만, 오랜만에 들여다본 어떤 사진들은 너무 많은 추억을 불러들여와 도무지 다음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폴더 몇 개 정리하는 데에만 한나절이 걸렸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후 다짐했다. 적게 찍고 자주 보기. 사진을 정리하며 분명하게 깨달았다. 추억하고 싶은 것은 결국 그때 내가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니라 그때의 나,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멋진 거리, 화려한 음식 사진은 고민 없이 지울 수 있어도 결국 남겨놓고 싶은 것은 나와 소중한 이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앨범에도 가슴속에도.
‘버리기’라는 행위가 주는 위안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돌아보니 그것은 일종의 임사체험(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었다. 떠남을 준비하듯, 내게 속한 물건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응시하고 덜어내는 것. 그러다 보면 종래에는 꼭 유언 같은 물건들 몇 개만이 수중에 남았다.”(책 ‘행복해지려는 관성’의 ‘버리기가 주는 위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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