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도 기대수명-재정 여건 고려해 조정 객관적인 기준 마련해 점진적으로 올리고 재정 절감분을 초고령사회 ‘마중물’로 써야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장
인구 고령화 추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보다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기대수명 증가와 재정 여건을 고려해 노인 연령을 조정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 건강보험 등 노인복지 지출 급증을 이미 경험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점진적으로 67세 이상으로 늘렸거나 늘릴 계획이 있다. 그 이후에도 기대여명 연장에 대응해 추가적으로 연령을 조정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기존 60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높였다. 그 결과 올해는 63세, 2033년에는 65세까지 늦추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또한 대전, 세종 지역에서는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버스 무료 이용을 지원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별로 새로운 노인복지 사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상향된 노인 연령을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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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인 연령은 건강 상태를 조정한 건강수명(Healthy Life Expectancy)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론조사 등 사회적 인식을 참고할 필요도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조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상향 조정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매년 1세씩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할 경우, 조정 시점에서 노인 연령 이하의 사람들은 조정 기간이 끝날 때까지 노인이 될 수 없다. 10년마다 1세씩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면 너무 느린 조정일 것 같지만 조정 시점에 태어난 아이는 7년 늦게 노인이 되며, 5년에 1세씩 조정하면 16년이 늦춰진 시점에 노인이 된다. 건강 개선 추세와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객관적이고 점진적으로 장기적인 조정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건강 상태의 격차를 고려해 노인 연령 조정에 따른 피해집단의 적응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지출이 충분히 확보되도록 해 복지 축소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면 노인복지 정책 대상이 축소돼 복지 재원이 절감되는데, 이 절감된 재원을 건강 상태가 열악하거나 건강수명이 현저히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저소득층, 비도시 지역 거주자 등의 복지 확대에 우선 투입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의 정책 방안을 마련해 복지 지출의 효과성을 높이고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인 연령을 조정해 절감한 재원의 일부는 둔화된 성장동력을 회복시키고 장기적인 복지 지출 수요를 절감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구 고령화로 재정 여건이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한다면 중기적으로는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고려해 △50세 이상 중고령자 재교육 및 재취업 지원 △정년 연장을 위한 임금 체계 조정 및 자율적 계속 고용 지원 △노동시장 이동성 개선 △거점도시 육성 및 교통 인프라 개선 등 사회투자 성격의 지출을 확대하고 장기적인 노인 복지 지출 수요를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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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