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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번역원정대도 떴다… 英-美 자문까지 해 오류 수정

입력 | 2021-02-17 03:00:00

‘60주년 기념판’ 완역 개정본에 국내 팬카페 골수팬 5명 교정 참여
1991년 국내 첫 번역 3명도 합류, 원작자 톨킨의 번역지침에 충실
The Water→워터강→믈강 등 500여개 번역 용어 새로 만들어
23일 국내 출간 앞두고 기대감 반영… 예약판매 이틀만에 초판 완판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고대(古代) 영어를 번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올바른 번역을 위해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난해 성탄절 ‘반지의 제왕’ 국내 팬 카페(‘중간계로의 여행’) 회원인 김지혁 씨(31)는 동카 밍코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에게 e메일 한 통을 보냈다. 출판사 요청으로 반지의 제왕 새 번역본의 교정 작업을 하다 난관에 부닥친 것. 이 팬 카페의 회원은 약 1만 명. 이 중 골수 팬 5명이 공동 교정에 참여했다.

김 씨는 비슷한 시기 다른 고대 영어 전문가인 마크 애서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에게도 e메일을 보내 도움을 구했다. 이들 덕분에 고대 영어의 유성음화(특정 음운이 성대의 진동을 수반하는 유성음으로 바뀌는 현상)로 인해 벌어진 번역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김 씨는 “전문 번역가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반지의 제왕에 빠져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하며 작품을 읽어 왔다”며 “고대 영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새 번역본을 펴내는 데 기여해 기쁘다”고 했다. ‘중간계로의 여행’ 회원들은 영국 초판에 쓰인 오류를 발견해 해외 출판사에 직접 알려줄 정도로 열성적이다.

영국 작가 존 로널드 톨킨(1892∼1973)의 걸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 60주년 기념판의 완역 개정본 ‘반지의 제왕 1∼3+호빗 세트’(아르테)가 23일 국내 출간을 앞두고 화제다. 이달 8일 예약판매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초판인 3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권수로 치면 1만2000부다. 장현주 아르테 본부장은 “반지의 제왕 팬 카페 회원들은 대체로 20, 30대의 젊은이들”이라며 “그들이 톨킨 작품에 대해 갖는 애정과 이해는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처음 펴낸 것은 1954년. 국내엔 1991년 ‘반지전쟁’(예문)으로 처음 번역 출간됐다. 이번 시리즈는 톨킨의 셋째 아들인 영문학자 크리스토퍼 톨킨이 개정에 참여해 영국 출판사 하퍼콜린스가 2014년 펴낸 60주년 기념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내 팬들이 예약판매에 몰린 건 수준 높은 번역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번 번역엔 1991년 국내 첫 번역에 참여한 번역자 3명이 다시 합류했다. 이들은 1991년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함께 공부를 하다 당시 번역에 참여했다. 이 중 한 명인 김보원 한국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30년 전의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옥스퍼드대 영문학과 교수이자 언어학자였던 톨킨은 자신의 작품을 영어 이외 언어로 번역할 때 지침을 따로 만들었다. 이번 시리즈는 이 지침에 따라 500여 개의 번역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The Water’라는 강을 1991년 판에선 ‘워터강’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번엔 ‘물’의 고어인 ‘믈’을 써 ‘믈강’으로 바꿨다. 이 밖에도 인물 사이의 말투, 어미, 존대법 등 세세한 부분을 토론을 거쳐 수정했다.

다음 달 중순엔 반지의 제왕 영화 시리즈가 4K 고화질 버전으로 재개봉한다. 2001년 1편인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가 국내에 처음 개봉된 지 20년 만이다. 배급을 맡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줄었지만 반지의 제왕은 고정 팬이 많은 만큼 재개봉 리스크가 적다”고 설명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