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는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든다. 초기 노년층, 주부 등이 주로 당하다가 의사, 법조인, 금융권 관계자 등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넘어가는 것을 보면 학력이나 지식보다는 심리적인 차원임을 알 수 있다. 갑자기 추궁이나 협박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노린 것이다.
▷그런 보이스피싱이 느닷없이 이른바 ‘박사방’ 사건에도 등장했다. 여성들을 협박해 제작한 성 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손석희 JTBC 사장과 윤장현 전 광주시장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혐의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 난데없이 보이스피싱이 불거진 것은 어제 아침 검찰에 송치되면서 언론에 얼굴을 드러낸 조주빈이 뜬금없이 손 사장과 윤 전 시장을 피해자로 거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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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속아 4억5000만 원을 송금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조주빈이 “JTBC에 출연해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사기를 쳤다. 윤 전 시장은 지난해 8월경 서울 모 기관을 사칭한 ‘최 실장’이란 사람의 전화를 받았으며, 정체불명의 최 실장과 함께 JTBC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동영상 촬영을 강요하고 착취한 ‘박사방’ 범죄의 발상이 구설수에 휘말린 유명인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든 보이스피싱에 변형돼 적용된 듯하다. 그 악질성과 간교함이 치를 떨게 한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