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트럼프의 ‘이유있는 돌풍’
70대 나이의 워싱턴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 돌풍은 일견 황당하다. 트럼프 돌풍은 코미디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인물과 ‘현상’을 구별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샌더스, 트럼프 돌풍은 일종의 ‘미국병’의 반영이며 강력한 변화를 원하는 미국인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국도 옛날 미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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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정책에서도 새로운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고립주의(isolationism)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 흐름이 엇갈리며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고립주의는 국제적 이해관계나 분쟁에 개입을 줄여 미국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주의는 오히려 분쟁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국익에 유익하다는 노선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재정이 피폐해지고 반전(反戰) 여론이 높아가자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국가들이 책임지라”고 했던 ‘닉슨 독트린’이 대표적인 고립주의 노선이었다. 카터 행정부도 비슷했다. 두 대통령의 정책들은 주한미군 철수 시도로 연결됐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에 더 이상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며 군수산업 육성, 핵개발 시도 등 자주 국방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이다.
고립주의 외교노선이 워싱턴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중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 과도한 군사적 개입으로 재정이 악화되고 국력이 소진되자 한국을 향해서도 “이제 당신들 경제력도 많이 성장했으니 그에 맞는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국무부 국방부 주위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상하원 의정활동에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미 의회조사국은 5일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은 미 정치권 일부의 시각을 보여준 것”이라는 공식 논평을 내놓았다. 한반도 전쟁 불개입, 주한미군 철수, 한일 핵무장 같은 트럼프 ‘망언’은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워싱턴의 변화된 기류를 일정 정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과거 미국 정치가 그랬듯이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은 이들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차기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 수렴될 수 있다.
다시 고개를 든 고립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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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지도자들을 뽑는 총선에서 안보 이슈가 내내 뒷전인 게 그래서 걱정이다. 한반도 운명이 이미 격랑 속에 들어가 있는데도 말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