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정치부 차장
“???”
“사람 되기 어려운 거래요.”
기자도 사람이다.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존경과 애정의 눈길로 바뀌는 경험을 적지 않게 한다. 조순형 전 의원(78·7선)이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그를 처음 본 건 1998년 11월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 그는 한 사형수가 사형제도에 대해 낸 헌법소원을 헌재가 4년 넘게 끌다 결국 사형이 집행된 뒤 사건을 종결한 것을 질타했다. “헌재에 삶의 마지막 기대를 걸던 사형수의 심정을 생각해 봤느냐.” 피 끓는 사회부 기자의 눈에 ‘헌재의 무소신 늦장 결정’을 꾸짖는 그는 멋졌다.
2001∼2004년 국회를 출입하면서 국회의원을 세 부류로 나눠 보게 됐다. 첫째, 지역의원. 지역 내 경조사 챙기는 일에 재선(再選)의 운명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둘째, 정당(정파)의원. 입 밖으로 나오는 언어의 대부분이 상대 당이나 정파에 대한 막말과 욕설이다. 재선의 활로는 줄서기에서 찾는다. 셋째, 국회의원. 국회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임을 자각한다. 물론 재선되고 싶지만 낙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야 여야를 초월하고 때론 국민감정마저 거스르는 소신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다시 만난 그는 국회의원이었다. 늘 헌법을 곁에 두고 있었다. 2003년 6월 법사위에서 직무감찰 위주의 감사원 기능에 큰 변화를 주겠다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개조론’을 비판했다.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인데 어떻게 부처로 넘기느냐. 감사원은 (청와대에) 헌법 공부부터 시켜라.” 2006년 노 대통령이 지명한 첫 여성 헌재소장 후보의 국회 임명동의가 결국 무산된 것도 야당의 수많은 비난 논평이 아니라 ‘조순형의 헌법’ 때문이었다.
요즘 정치권은 대선 불복이냐, 헌법 불복이냐를 놓고 싸운다. 그가 늘 일갈했던 것처럼 ‘헌법 공부는 제대로 하고’ 싸우는 것인지 궁금하다. 국회사무처의 한 간부는 “조순형이 떠난 국회에서 그 빈자리를 채울 ‘의정 스타’가 아직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당 대표나 대선주자 역할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의 부인은 기자에게 “남편이 국회의원은 굉장히 잘했지만 (당 대표 등) 다른 역할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동의한다.
‘국회의원 조순형’, 그가 그립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