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논설위원
“의장국 한국이 세계경제의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경제의 새 규범과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냈다. 한국은 글로벌 선도국가로서의 지적 리더십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G20 회의를 성공적으로 주최했다는 자부심에 들뜬 MB 청와대 핵심 당국자들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세계 언론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정상의 발언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움직임에 주목했지 한국 대통령의 영향력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단군 이래 최대 정상행사’였던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직후 청와대는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 정치적 선언 단계에 있던 회의를 실천의 단계로 진전시켰다”며 으쓱해했다. 하지만 핵과 방사능 테러 방지를 위한 포괄적 실천조치를 담고 있다는 ‘서울 코뮈니케’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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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에게 ‘더 큰 대한민국’을 각인시키는 데 다자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각에 빈자리가 숭숭 눈에 띄고 국회는 절름발이 신세인데 대통령이 허구한 날 밖으로만 돈다고 비판할 일이 아니다. “외국에 가면 대접 잘 받는다”며 ‘힐링’ 차원에서 해외 순방길에 오르던 시절은 한참 지났다.
10월은 지난달 G20 정상회의에서 다자무대에 데뷔한 박근혜 대통령이 본격적인 ‘외교의 맛’을 느끼게 될 중요한 한 달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동아시아정상회의(EAS)로 이어지는 바쁜 일정이다.
이번 회의의 주무대인 동남아 지역은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앞마당’에 가깝고, 정치적으로는 중국이 영향력을 무한 확장하고 있는 곳이다. 동시에 동남아는 중국에 이은 제2위(1310억 달러) 교역대상이자,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연간 430만 명)이다.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을 뒷짐 지고 구경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이 ‘아시아의 미래’라는 틀을 제시해야 한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 양쪽 모두에서 성공한 ‘스토리’는 동남아에도 충분한 흥행요소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 퇴장으로 공석이 된 아시아 지도자의 탄생을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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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