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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낙서’ 예술로 승화하다

입력 | 2013-02-19 03:00:00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 전




장미셸 바스키아의 ‘데스몬드’(1984년). 국제갤러리 제공

이민자 출신 유색인종에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비주류 작가였다. 17세 때 학교를 그만둔 뒤 친구들과 쏘다니며 뉴욕 소호의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렸다. 사회 정치적 모순을 꼬집은 낙서와 문구는 뜻밖에 주류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연인설까지 나돌던 앤디 워홀과 공동작업을 할 만큼 명성을 쌓았고 세기의 팝스타 마돈나와도 염문을 뿌렸지만 만 27세 나이에 코카인 중독으로 요절했다

미국 미술의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극적인 삶이다. 그의 짧은 생애와 열정적 창작 활동은 화가 출신 영화감독 줄리언 슈나벨의 영화 ‘바스키아’(1996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신표현주의의 스타이면서 1980년대 하위문화의 아이콘인 바스키아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 K2, K3에서 열린다. 02-735-8449

대형 캔버스나 나무판자 위에 어린이가 서툴게 그린 듯한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유년시절 교통사고로 비장을 제거한 뒤 탐독했던 해부학 책의 이미지, 만화책 및 낙서와 관련된 기호와 상징이 복잡하게 뒤섞인 작품들이다. 그림의 주제는 자전적 이야기, 야구선수 행크 에런 등 흑인 영웅을 통한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비판, 죽음과 관련된 문구로 요약된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SAMOⓒ’란 이름 아래 스프레이 페인팅을 시작한 소년은 그래피티가 현대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미술평론가 유진상 씨는 “그의 작업은 전통적 미술언어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팝아트는 물론이고 후기 피카소와 추상표현주의 2세대인 사이 톰블리의 영향, 로버트 라우센버그에서 신표현주의까지 1960∼80년대 미국 미술의 경향을 집대성했다”고 말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