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낮은 보험수가로 지원 기피
많은 동료 의사가 현실적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산부인과 의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산부인과는 24시간 365일 항시 응급상황인 분만 대기상태로 개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다른 과보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와 높은 의료사고율로 전공의 지원율이 가장 낮은 과 중 하나가 된 지 이미 오래됐다. 설상가상 지원자가 적다 보니 전공의 1명당 환자 수가 증가하여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악순환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진료의 특성상 응급상황이 많은데도 국가의 응급체계가 부족하고 그 책임은 모두 산부인과 의사에게만 지우는 현실에서, 분만 사고에 따른 부담으로 본업인 분만 자체를 포기하는 의료기관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고 로드중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은 산부인과 의사들만이 져야 하는가? 사회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국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장려정책’을 중요한 어젠다로 삼고 각종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왠지 각종 정책이 조화롭지 못하고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는 얼마 전 분만 병원이 없는 취약지역에 대한 지원 대책을 생색내듯 발표하였다. 그러면서 그와는 정반대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근근이 분만 현장을 지키는 산부인과엔 부담과 고통을 안기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 통과에 따라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재원 마련 주체에 대한 논의가 그렇다. ‘분만’으로 인한 의료사고에 이 제도를 적용하면서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에 50%의 재원을 부담하게 한다고 한다. 분만 과정 중 의사의 잘못(과실)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의사의 잘못이 전혀 없음에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와 관련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분만 과정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닌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차원에서 사회적 부담을 국가가 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산부인과 의사의 잘못 없이 일어난 결과를 분만실의 의사에게 50%를 부담 지우려는 법률을 만들고 있다.
출산 장려는 단순한 구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저출산 현상과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가 환경 속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홀로 고가의 분만장비와 시설 투자, 24시간 근무할 간호팀 수급 등을 책임져 왔다. 산부인과 의사가 본업인 분만을 포기하게 된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문제가 된 것처럼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임산부와 태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광고 로드중
앞으로는 적어도 산모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산부인과 의사들의 뼈를 깎는 아픔과 노력도 필요하지만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저출산을 해결하고 국민 건강을 위한 의료 환경을 다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장석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