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논설위원
김 씨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가출해 1981년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용접공이 된 뒤 방송통신고에 가려고 했다. 재직증명서를 떼러 간 그에게 회사 대리는 “방통고 나온다고 니 인생에 꽃이 필 것 같나”라며 거부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글재주에 놀랐다. 그가 방통고를 거쳐 대학에 갔다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에 해고된 뒤 세 번의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 두 번의 구속과 수배생활 5년이란 그의 이력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종북(從北)도 좌파도 아니면서 제 돈 들여 ‘희망버스’에 탄 사람 중에 김 씨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에 사회적 동정(social sympathy)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짠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측은지심이나 동정심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겉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목표로 내건 ‘희망버스’의 동조자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비정규직이 870만 명이나 되고 직장인이라면 정리해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동병상련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법치 개념이 약한 국민을 이용해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는 세력은 얼마나 많은가. 뒷감당할 능력도, 책임질 마음도 없으면서 굿판이 벌어지는 곳마다 몰려가는 자들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위선자들이다. 광우병 사태나 용산 참사 때 맹활약한 주역들이 희망버스 행사에 열심이다. 순진한 여중생들을 앞세워 정권에 대한 적개심으로 세상을 뒤집으려 한 세력과 한진중공업 사태를 주도하는 세력은 크게 다르지 않다.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공개적으로 김 씨에게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말하지 않는 건 참으로 잔인한 짓이다. 8개월 동안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견디며 크레인 위에서 사는 건 감옥생활보다 나을 것도 없을 게다. 김 씨는 이제 스스로 크레인을 내려올 수도 없다. 희망버스가 저렇게 응원하는데 어떻게 그러겠나.
김 씨를 동정하고 응원하는 사람 누구도 그 대신 구속될 수도, 감옥생활을 해줄 수도 없다. 김 씨가 희생양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5차 희망버스’는 그를 크레인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야당도 ‘우리가 국회에서 노력할 테니 이제 내려오라’고 김 씨를 설득할 때다. 1998년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민주당이 김 씨의 불법 크레인 시위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이나 노린다면 위선의 정치일 뿐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