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지난 세기와 달리 묵묵히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일꾼보다 혁신적이고 유연한 인재가 중요한 시대다. 주력 산업이 사양화되고, 새로운 산업이 떠오를 또 다른 10년을 앞두고 기업들은 저마다 임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아 참신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한데 변화와 리더십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쇠귀에 경 읽기’식으로 구태의연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임원들이 꽤 있다. 연말에 송년회를 다니다 보면 회사마다 악명 높은 간부들의 얘기가 나오는데 스타일도 여러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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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 고생하는 파트는 이쪽인데 인사고과는 엉뚱한 사람을 잘 주는 리더도 예상 밖으로 있다. 조직에 중요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C를 주고, 평소 같이 밥 잘 먹고 술 잘 마셔준 사람은 ‘성격이 좋으니 일도 잘한다’고 생각해 A를 준다. 이런 무신경한 리더 때문에 10여 년 입사 이래 가장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C를 받고 사표 낸 사람도 봤다.
스마트 시대에도 무조건 오래 일하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간부가 꽤 있다. 근무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휴일이나 한밤중에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휴일마다 따라 나와야 하는 아랫사람들은 고역이다.
회의를 쓸데없이 오래 하는 사람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회의 내용을 미리 숙지하고 효과적으로 논의해서 빨리 결론을 내리면 될 것을 공연히 시간만 질질 끈다. 오후 9시, 10시까지 밥도 못 먹게 사람을 붙잡아 놓지만 결과를 보면 30분 안에 실속 있게 회의를 끝내는 사람보다 못하다.
자신은 퇴근하면서 “내일 이러저러한 거 보고하라”고 하는 임원에게는 할 말을 잃는다. 하루 종일 별 얘기 못 듣고 퇴근시간 다 되어 지시를 받은 아랫사람은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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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아랫사람의 절실한 고충을 해결하지 않고 늘 “네가 참아라”라고 뭉개는 비겁한 사람, 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뭐든지 두 배 세 배 힘들게 시키는 사람 등도 원망의 대상이다.
열심히 일 잘하던 인재가 갑자기 해외유학을 가거나 다른 회사로 옮긴다고 사표를 낸다면 다른 이유가 숨어있을 때가 많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조직이지만 속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일의 보람이나 소통의 희망을 잃은 경우다. 이처럼 좌절해서 사직하는 한 사람의 뒤에는 비슷한 불만을 가진 10명, 20명이 있다.
우리 조직은 과연 건강한가. 우리 회사에는 이처럼 일하는 즐거움을 뺏는 ‘나쁜 리더’가 없는지,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새해를 맞기 전에 점검해보자.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