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원의 주장은 작금의 문제는 자신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 간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선진국민연대의 국정농단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물론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을 비롯한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주장은 다르다. 정 의원 중심의 일부 친이(친이명박) 세력이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을 죽이기 위해 의혹을 부풀리고 퍼뜨리는 식으로 ‘등에 칼을 꽂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은 공식 해체됐지만 한때 460만 명의 회원을 거느렸던 선진국민연대와 관련해 빚어지고 있는 다툼이라는 점이다.
사실 정권 내 사조직 문제는 비단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늘 두통거리였다. 경선이나 선거를 치르는 후보 처지에서는 도움 받을 때는 좋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뒷감당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 때의 월계수회, 김영삼 정권 때의 민주산악회와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 김대중 정권 때의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 노무현 정권 때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그것이다.
정권 내 사조직 문제나 권력투쟁은 이너서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내부 관계자가 작심하고 터뜨리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례도 작은 조각들에 불과할 뿐이다. 도대체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히 알아야 처방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대부분 숨기기에 급급하니, 그 고질병이 지금까지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은폐의 배경에는 사조직 내부의 공범의식도 깔려 있을 것이다.
정두언 의원이 언급한 비망록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 의원이 알고 있는 게 진실이라면 차제에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역사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당장은 정권에 부담이 될 수도 있겠으나 길게 보면 대한민국을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쓴 약’이 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도지는 고질병의 악순환을 누군가는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망록을 전당대회 결과와 연결짓는 것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