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 은행 경영진 자질 ‘사전심사’ 논란
‘황영기 투자손실’ 포착한5, 6월부터 英모델 검토
임원 후보 사전보고 의무화
대형 금융사 매년 종합검사 예금대비 과도한 대출 규제
무분별 외형 확대경쟁 제동
○ 은행 경영진에 ‘검증의 칼’
금융당국이 은행장과 은행 임원 선임에 앞서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방침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5, 6월경이다. 금감원이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하면서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로 1조620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낸 정황을 포착한 시기와 일치한다.
당초 금융당국은 특별한 견제장치 없이 은행장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에 주목하고 현재 계약직으로 돼 있는 부행장을 2년 안팎의 임기제로 전환해 은행장을 견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은행별로 10명 안팎인 부행장 가운데 임기가 보장된 등기임원은 수석부행장뿐이고 나머지 부행장들은 1년 계약직 신분이어서 행장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발언을 하기 어렵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은행장의 지휘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대부분의 은행들이 부행장 임기제 전환에 반대하자 금융당국은 은행장, 수석부행장, 감사 등 은행의 최고경영진을 구성하는 등기임원들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좌진(부행장)을 통해 무리한 경영행위를 견제토록 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경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경영진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고경영자(CEO) 한 명의 독자적인 판단이 개별 은행뿐 아니라 전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른바 ‘은행 CEO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금융권 “정부 입김 더 커질 것” 우려
FSA는 은행 경영진 선임에 앞서 해당 후보의 △청렴성 △전문성 △건전성 등을 검증한다. 임원 후보가 과거 금융시장에서 활동한 내력을 추적할 뿐 아니라 앞으로 맡게 될 업무를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 등을 테스트하는 각종 장치를 고안해 부적격자가 은행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FSA는 임원 재임 기간에도 수시로 적격성 심사를 해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승인을 취소하기도 한다. 이런 엄격한 사전 검증 절차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은행권은 사전 적격성 심사제도가 강화되면 은행 경영을 자율적으로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만약 행장추천위원회가 금감원에 올린 후보가 거부되고 금감원이 승인한 다른 인물이 행장으로 선임되면 그 은행장은 아무래도 정부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제조업체와 달리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리스크 관리를 위한 최선의 장치들을 마련해 둬야 한다”며 “적격성 심사를 강화한다고 해서 당국이 은행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형 금융사 매년 검사도 추진
금감원은 은행 보험 증권 카드사 등의 재무 건전성과 주요 투자 현황, 조직관리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검사를 2, 3년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대형사에 한해 이런 종합검사를 매년 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과 삼성생명, 대우증권, 현대카드 등 자산 규모가 큰 금융회사들은 1년에 한 번씩 금감원의 현장검사를 받게 된다.
또 은행들의 지나친 외형 확대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자산 증가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예를 들어 은행의 예금수입 대비 대출금 비중이 100%를 넘으면 은행이 무리하게 대출을 많이 했다고 보고 대출을 줄이도록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감사를 선임할 때 공모를 거치도록 한 것은 금감원과 금융회사가 유착돼 있다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