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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前총리 연세大 강연 “성과 낼수있는 똑똑한 정부 필요”

입력 | 2005-11-24 03:02:00

고건 전 국무총리가 23일 서울 연세대 상경대 대강당에서 지난해 5월 퇴임한 뒤 국내에서는 처음 강연을 했다. 고 전 총리가 한 학생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고건(高建) 전 총리가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고 전 총리는 23일 오전 서울 연세대 상경대 대강당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가는 통합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해 5월 퇴임한 뒤 국내에서 가진 첫 대중 강연이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은 학생 600여 명이 복도까지 들어차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고 전 총리는 이날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이념 공방을 벌이는 현 정치권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이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보수와 진보의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우리 사회는 복합적 위험에 노출된 ‘다중적 위험사회’다. 이념에 사로잡힌 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처한 위험에 대처하는 데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리더십으로, 권위주의 시대에서 잉태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권위주의 시대의 흑백논리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현 정부의 ‘이념 과잉’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고 전 총리는 “아무리 로드맵이 좋아도 실행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작은 정부나 큰 정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성과를 나타낼 수 있는 똑똑한 정부가 필요하다”며 참여정부의 비효율을 우회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그는 “정치 리더십이 이상과 열정만 앞세워 개혁을 강제하려 할 때, 또는 기득권의 보호에 급급해 현실에 안주할 때 역사는 정체되고 주춤거렸다”며 현 정부와 야당을 동시에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어 고 전 총리는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현실의 과제와 미래의 비전을 구현하려는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 뒤 ‘국민중심당이나 민주당에 합류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한 학생의 질문에 고 전 총리는 “저는 지금 정치인도, 정당인도 아니다. 그런 당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 고 전 총리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3월 12일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기도 했다. 당일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긴박했던 순간을 그는 ‘숨 막히는 6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탄핵이 의결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으나 TV 생중계에서 분위기가 의결 쪽으로 가는 것을 직감하고는 눈앞이 깜깜했다”며 “제일 먼저 헌법책을 펴 관련 규정을 찾아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안보, 외교, 경제, 치안 등 관계 기관에 대책을 지시했다는 그는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우는 동안 한 손은 전화를 붙잡고 있었을 만큼 긴박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한편 고 전 총리 측은 이날 이후 예정된 대학 강연이 40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고 전 총리가 젊은 층에 다가가려는 ‘강연 정치’를 시작으로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