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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프로야구/마니아칼럼]봉중근, '위기의 신시내티'를 구하다

입력 | 2004-06-18 14:18:00


'비록 승은 낚지 못했지만, 위기의 신시내티를 구했다.'

16일 신시내티의 홈구장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대 텍사스 레인저스전에 선발 등판한 봉중근은 4회까지 최고구속 90마일짜리 직구와 예각의 브레이킹볼을 앞세워 완벽한 피칭을 보였지만 5회 홈런 2방을 허용하며 4실점, 아깝게 첫 승에는 실패했다.

봉중근은 2-4로 뒤지던 6회를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와 시즌 2패의 위기를 맞았지만 신시내티 타자들이 8회와 9회 각각 1점을 뽑아내 4-4 극적인 동점상황을 연출, 봉중근은 가까스로 패전을 모면했다.

극적인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한 신시내티는 연장 11회 말 1사 만루의 기회에서 배리 라킨의 끝내기 안타로 5-4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 7연패의 사슬을 끊는 데 성공했다. 경기 초반 깔끔한 투구로 팀 분위기 쇄신에 일조한 봉중근도 귀중한 1승에 숨은 조연역을 충실히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개인 통산 500홈런에 -1로 접근, 국내팬들로부터 봉중근의 시즌 첫 승과 통산 500홈런의 동시 달성을 기대케 했던 켄 그리피 Jr.는 아쉽게도 이날 홈런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장타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 출루와 컴팩트 스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 7일만에 등판, but '안정감 OK'

지난 9일 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 올 시즌 첫 선발로 등판했던 봉중근은 이날 등판으로 7일만에 등판했다. 일반적으로 5일 내지 6일만에 등판하는 메이저리그의 선발 로테이션을 기준으로 할 때 하루 지연된 것.

하지만 봉중근의 초반 컨디션은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 콜리시엄에서의 첫 선발 등판때보다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물론 홈구장이라는 정신적 안정감이 마운드에 선 봉중근의 안정적 피칭을 가능케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3회와 4회 연속으로 삼자 범퇴시킬 당시 피칭 내용은 발군이었다. 오클랜드전에서 보여준 직구 일변도의 피칭에서 벗어나 브레이킹 볼을 적절히 배합한 제이슨 라루의 리드가 적절하게 먹혀들어간 것. 게다가, 서클 체인지업과 스트레이트 체인지업도 오클랜드전보다는 훨씬 위력적이었다.

◎ 악몽의 5회 초

5회 초만 잘 넘기면 봉중근은 그야말로 '신시내티의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신시내티의 7연패를 끊는 '스토퍼(Stopper)'로 혜성처럼 등장, 시즌 첫 승과 동시에 팀의 구세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를 수 있는 운명의 한 이닝이었다.

하지만, 봉중근은 고비인 5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그 원인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째는 수비의 지원 부족이며 둘째 원인은 볼배합의 문제다. 그리고 심리적 요인으로 4회 라루의 주루사도 결정적

ㅁ 화근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오클랜드전에서도 봉중근이 시즌 첫 등판에서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쓰게된 발단은 1회 말 2사 후 3루수 팀 험멜의 알까기였다. 이후 봉중근은 1회에만 5실점하며 자신의 투구 리듬을 완전히 상실했었다.

텍사스전도 그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5회 초 선두타자는 투수 케니 로저스. 봉중근이 승리 요건인 5회를 무사히 넘기기엔 최적의 타순이었던 것. 봉중근이 로저스를 상대로 볼카운트 2-0까지 끌고갈 당시만 해도 첫 승의 꿈은 영글어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봉중근의 원바운드성 브레이킹볼을 로저스가 헛 스윙해 삼진 아웃으로 처리되는 순간, 그 공은 포수 제이슨 라루의 미트 끝을 맞고 덕 아웃으로 튀어버린 것. 로저스가 1루로 살아나갔다. 미트를 먼저 갖다댄 라루의 블로킹 실책에 가까웠다.

ㅁ 5회 볼배합 노출

3회와 4회 연속으로 텍사스 타자를 삼자범퇴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제구력잡힌 브레이킹 볼에 텍사스 타자들 방망이가 숨죽인 게 주요 원인. 텍사스 타자들은 5회에 들어서면서 봉중근의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타격 포인트를 잡고 나왔다.

반면, 봉중근과 라루의 입장에서는 '잘 먹히는' 구질에 대한 의존도를 급작스럽게 높인 게 5회 초 대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로저스의 출루에 이은 에릭 영의 볼넷으로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2번 마이클 영을 72마일짜리 스트레이트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3번 알폰소 소리아노는 변화구 구사빈도가 높아진 봉중근의 투구 패턴을 알고 노리고 타석에 들어섰던 것. 소리아노는 봉중근의 초구 브레이킹 볼을 기다렸다는 듯 걷어올렸다.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역전 3점포. 2-3으로 봉중근의 승은 일단 날라가 버린 것. 이후 허버트 페리에게도 한 가운데 실투성 체인지업을 통타당해 추가 실점, 봉중근의 시즌 첫 승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소리아노와 페리가 노린 것은 봉중근의 직구가 아니라 변화구였다는 사실. 이 날 너무 잘먹히던 구질을 노리고 들어온 텍사스 타자들의 수읽기 싸움에서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반면, 라루가 3,4회의 투수 리드와는 반대로 5회에는 스트레이트 위주로 볼해합을 가져갔다면 이날 봉중근의 첫 승은 가능했지도 모를 일이다.

ㅁ 4회 말 라루의 '결정적인' 주루사

5회 초 로저스를 어이없이 출루시키며 패배를 자초한 라루와 봉중근. 이 두 배터리가 냉정을 잃게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4회 말 라루가 홈에서 태그 아웃된 게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걸로 보인다.

2사 후 몸에 맞는 볼로 1루로 출루한 라루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팀 허멜의 중월 2루타때 홈까지 파고든다. 하지만, 간결한 텍사스의 중계 플레이와 포수 로드 바라하스의 절묘한 블로킹에 홈에서 태그 아웃되어버린 것.

그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선수가 바로 라루와 대기타석의 봉중근이었다. 이 두 선수는 추가점을 얻어 3-0으로 앞서나갈 수 있는 결정적인 상황이 무산되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 채 5회 초 수비에 임한 게 로저스 타석에서의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이어진 걸로 보인다.

◎ '위기의 신시내티', 희망을 쏜 봉중근

텍사스를 상대한 봉중근의 투구 안정감은 오클랜드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향후 등판에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안정감이 두드러졌다.

물론 5회 홈런 2개 포함, 4실점하며 승을 날려버린 점은 한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만 5회 실점한 후 6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강판했다는 점은 더더욱 높이 사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애틀란타 시절 불펜에서 활약한 봉중근의 어깨가 선발용 어깨로 전환에 완전 성공했다는 사실의 방증인 셈.

6이닝 동안 5피안타 4볼넷 6탈삼진의 피칭은 비록 4실점에도 불구, 상당한 호투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게다가 6월 들어 마운드가 완전 붕괴된 신시내티 입장에선 6이닝을 4실점으로 막아준 봉중근의 피칭은 '가뭄 속 단비' 그 자체다.

선발투수의 한계 투구수 기준인 100개를 넘겨 105구(스트라이크 61개, 볼 44개)까지 던진 봉중근은 일단 돈 굴릿 투수코치로부터 선발투수로 합격점을 받은 상황. 시즌 평균자책도 10.80에서 7.71로 대폭 낮아졌다. 봉중근은 이날 호투로 향후 선발 낙점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잘먹혀 들어간 브레이킹볼은 직구 일변도의 투구를 보였던 오클랜드전에 비해 봉중근의 투구에 다양성과 위력을 동시에 부여했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존 낮은쪽으로 깔려 들어간 최고구속 90마일짜리 직구의 볼끝에도 힘이 실린 모습.

이날 비록 승리를 거두는 데는 실패했지만, 봉중근은 7연패에 빠져 절망의 수렁에서 허덕이던 신시내티팬들에게 희망을 던져줬음에 틀림없다. 봉중근은 신시내티 선발 로테이션의 좌완 희망봉으로 입지를 굳혀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등판에서 승리를 기대하기는 전혀 무리가 아닌 걸로 보인다.

이일동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sp5dnlw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