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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기도 패션상품 디자인이 앞서야죠”

입력 | 2002-10-09 17:43:00

산업디자이너들은 상품이 자신의 자식같다. 김영호 LG전자 책임 연구원(왼쪽)과 김진선 삼성전자 과장이 ‘자식’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했다. 김연구원은 폴더가 회전하는 휴대전화를, 김 연구원은 24인치 LCD 모니터를 디자인했다. 하임숙기자



《애플컴퓨터 ‘아이맥’이나 소니의 개인휴대단말기(PDA) ‘클리에’를 누군가 쓰고 있다고 생각하자. 귀엽고 깜찍한 디자인에 먼저 눈길이, 다음으로 손길이 간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기기에 말이다. 요즘 정보기술(IT) 기기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창조적인 디자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외면받는다. 한국 제품은 가격 대비 성능은 좋은데 디자인은 ‘꽝’이라고? 천만에. IT 기기, 특히 휴대전화나 모니터에 관한 한 그 같은 선입견은 보기 좋게 틀린다. LG전자가 내놓은 ‘세계 최초’ 폴더가 회전하는 휴대전화나 벽에, 천장에 마음대로 걸 수 있는 삼성전자의 액정화면(LCD) 모니터는 특히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디자이너들을 만나 개발 스토리를 들어봤다.》

LG전자가 내놓은 ‘세계 최초’ 폴더가 회전하는 휴대전화나 벽에, 천장에 마음대로 걸 수 있는 삼성전자의 액정화면(LCD) 모니터는 특히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디자이너들을 만나 개발 스토리를 들어봤다.

#얌전한 샐러리맨? 불같은 열정!#

첫눈에는 얌전한 샐러리맨 같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웬걸, 아이디어가 넘친다.

“휴대전화 디자인에 관한 한 한국은 이미 보고 배울 곳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히트한 상품이 세계 시장에서 먹히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김영호 LG전자 책임연구원(38)은 이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얼마 전 액정화면이 270도 돌아가는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디지털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도 단순히 전화가 아니라 ‘찍는 기기’라는 발상을 한 것.

당연히 카메라나 캠코더의 LCD처럼 휴대전화의 LCD도 회전해야 했다. 가장 쉽고 편한 자세로 자신이 찍는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작업하자면 말이다.

그런데 기술개발팀과 이 지점에서 부닥쳤다.

“디지털 캠코더나 카메라는 1년에 많이 써봐야 기껏 열댓번 되나요? 그러나 휴대전화는 1년 365일 쓰죠. 매일 LCD 화면을 돌려보세요. 그게 안 부러지나.”

360도 돌리면 회선이 얽히기 때문에 최대한 돌리게 한 각도는 270도. 아슬아슬하게 좁은 부위가 1년 내내 회전시켜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야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

“회사에서 제품 디자인팀과 기술개발팀은 늘 부닥치게 돼있어요. 그래도 최고 경영층에서 IT 기기의 디자인에 대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의 요구사항이 많이 받아들여지는 편이지요.”

색상은 ‘디지털’하고도 ‘사이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회색이나 펄화이트 등을 채택했고, 재질도 금속을 차용했다. 일부러 외관을 각지게 만들어 고급스러운 느낌과 단단한 느낌이 들게 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 휴대전화를 들고 버라이즌 스프린트 등 해외 이동통신서비스업체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느냐”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 한국 시장에서도 10대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어 ‘없어서 못 판다’는 것이 LG전자의 설명이다.

“휴대전화는 이제 기술상품이 아니라 패션상품이 됐죠.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는 트렌드를 미리 예측하고 소비를 이끌어내듯이 우리도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진짜 소비자 니즈(Needs)를 찾아낼 겁니다.”

#“IT 기기가 따뜻해지고 있어요”#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 김진선 과장(33)은 직장생활 9년 가운데 6년을 모니터와 함께 보냈다. 뚱뚱하고, 얇고, 컬러풀하고, 단조로운, 각양각색의 모니터들과 뒹굴며 일하며 지냈다.

그중 지난해 내놓은 24인치 모니터는 그에게 남다르다. 국내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비롯해 올해 미국 가전쇼에서 ‘베스트 오브 이노베이션 상’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것. 6월에는 비즈니스위크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컴퓨터의 모니터가 24인치로 커진 곳은 삼성이 처음이었습니다. 거기다 디지털 TV를 수신할 수 있는 TV 겸용이었고, 스피커도 외장형이었죠. 모니터였다가 TV였다가 때로 오디오도 되는 것, 바로 ‘멀티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자는 거였죠.”

이 커다란 모니터는 옆으로 넓은 대신 벽걸이형으로 설계돼 천장에, 벽에 자유자재로 걸 수 있다. 집에 사무실을 꾸민 소호(SOHO)나 프레젠테이션용으로 적합하다는 설명.

이 모니터는 특이하게 스피커가 외장형이다. 미니 컴포넌트처럼 5W 정도의 출력을 가진 스피커 두 개를 나란히 세움으로써 이 모니터는 ‘멀티 플레이어’로 변신한다.

“IT 기기는 더 이상 차갑지가 않아요. 그냥 기술적으로 향상된 제품을 내놓고 한번 써봐라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쓸 수 있도록 복합기능이 들어가죠. IT가 따뜻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욕심만큼 ‘충분히 따뜻한’ IT 기기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건 바로 기술적 한계.

“예를 들어 모니터 뒷면에 있는 발열 구멍 있죠? 기능상으로는 그게 많을수록 좋은데 디자인상으로는 적을수록 좋아요. 어떨 때는 기술팀과 구멍 개수를 놓고 논쟁을 벌이거든요.”

그는 평소에는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덕수궁 경복궁 같은 옛 궁(宮)들을 찾아 자연의 색을 느끼고 전통 디자인을 배운다. 인사동 미술관도 즐겨 찾는다. 색채 전문 디자이너들처럼 색상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디자이너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새로운 게 아니라 기존보다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이끌어내죠. 잘 디자인된 상품이 인기를 얻으면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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