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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황혼이혼 不可' 안쓰럽다

입력 | 1999-12-09 19:48:00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하나. 가부장적 순종 강요에 반발해 황혼이혼 소송을 낸 할머니에게 대법원이 ‘안된다’며 패소판결을 내린 사건은 이런 문제를 곰곰 되씹게 한다. 가정의 근본은 사랑과 행복이며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부부의 의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일방적으로 한쪽에 의해 강요되고 거기에 폭언과 폭행, 의심까지 수반할 경우 다른 한쪽은 이를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

52년간 결혼생활 끝에 76세의 나이에 이혼소송을 낸 김할머니의 경우는 법의 판결의 적정(適正)여부를 떠나 우선 안쓰럽다. 결혼생활 50년이 오죽했으면 더이상 견디지 못해 이혼소송을 냈겠는가.

김할머니는 대법원이 혼인당시의 가치기준 등을 들어 ‘이혼불가’판결을 내리자 “가부장적 남성집단의 입장만을 대변한 행위”라며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여성단체들도 “법원이 여성의 권익신장은 외면한 채 결혼당시의 가치관(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제도)이 중요하다는 것만을 강조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대법원측은 이번 판결이 “판례로 확립된 이혼의 귀책사유를 엄중하게 판단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혼사유의 하나인 ‘배우자의 부당한 행위’를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폭행이나 학대 중대한 모욕’으로 엄격하게 해석해 ‘부부 공동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생활의 강요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로 이혼사유를 한정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여기에는 최근 늘어나는 이혼추세, 특히 황혼이혼의 급증에 법원이 경종을 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법원의 이런 판단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과연 김할머니 부부의 정상적 동거생활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과 행복이 ‘이혼 불가’라는 법적 판결만으로 그 가정에 깃들일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할머니의 행복추구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떠나고 싶어하는 부인에게서 병수발을 받아야 하는 남편 역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법원은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을 내세웠지만 그중 하나인 해로동혈(偕老同穴·부부가 함께 늙고 죽어 함께 묻힘)은 김할머니 부부에게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여권 신장을 포함, 개인의 행복을 확대하는 쪽으로 사회적 가치와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과거 가치와의 충돌을 현명하게 극복해나가는 지혜를 짜내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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